어릴 적 황신 교수는 공학도가 되고 싶었다. 고향 마산에서 병원장을 하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의사가 된 이후에도 각종 전자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취미 삼아 제작했다. 1993년 레지던트 시절, 우리 병원의 초기 병동 OCS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했을 정도로 프로그래밍 실력이 뛰어났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턴테이블이나 진공관 앰프 같은 음향기기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곤 했다.
그가 간담도외과 전임의로 있던 1997년, 이승규 교수의 주도 아래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이 병원에 막 도입되고 있었다. 처음이 다 그렇듯 모든 것이 예측불허, 불확실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청춘을 불살랐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겠죠." 그는 97년부터 3년간 동료들과 함께 병원에 살면서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과 병실을 돌아보는 생활을 했다. 환자를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는 스승 이승규 교수를 보며, 팀원들도 개인 생활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끈기있게 지금의 간이식 프로그램의 초석을 다져 나갔다. 그 과정에 황 교수의 공학도적 재능도 한몫했다. "새로운 기계를 설계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가져와 활용하는 것처럼, 새로운 수술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그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경과를 추적, 분석한 데이터를 응용해 새로운 치료 방법들을 제시했다. 간이식 프로그램을 세팅하는 동안, 안전한 간 절제 범위를 찾아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자료와 수술 사례 등을 가지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수술방법과 적응점을 찾아내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그의 시간 계산법은 조금 특별하다. "사람의 시간자원은 한정되어 있지만, 집중적으로 무언가에 몰입했을 땐 시간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KONOS 운영위원, 심평원 심사위원 등 외부 기관과 관련된 타이틀만도 6개. 팀의 명성만큼이나 그들이 다루는 수술의 난이도, 증례수, 환자치료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올 9월,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에 취임했다.
기존 일정을 소화하기도 24시간이 빠듯하지만, 그는 더욱 안전한 수술법을 개발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매년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다. 임상과 기초 연구에서 발견한 사실을 학회에 알리고, 팀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 그는 그것이 환자와 팀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술이 없는 주말엔 20시간 이상을 논문 쓰는데 투자한다.
빡빡한 일정을 무난히 소화하면서도 매년 20여 편 가량의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는 황신 교수. 그만의 시간 관리 비결은 바로 집중력이다.
환자들은 그에게서 사람의 체온과 온기를 느낀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종이 한 장을 들고 혼자 병동에 찾아가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의 손을 잡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공중보건의를 할 때 경상도 대표를 맡았던 경험이 적잖이 도움이 된다.
이야기 도중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으면 들고 갔던 종이에 적어 담당 간호사에게 조용히 전해주고 돌아온다.
질문을 하면 설명도 자세히 해 주니 환자가 그를 신뢰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가 이렇게 먼저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의사의 말을 믿고 잘 따라주는 환자들이 결과도 좋았다는 오랜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병동 간호사들 사이에서 그는 환자의 상처를 직접 보고 소독해 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장기 기증 후 배 위 남는커다란 흉터를 혹자는 '영광의 상처'라고도 부르지만, 수혜자는 기증자의 흉터를 보며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생체 간이식 기증자 중에서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이 60%나 됩니다. 자기 때문에 아들, 딸의 배 위에 큰 흉터를 남겨야 하는 부모들은 가슴 아파하지요."
그가 짬짬이 병동을 돌며 닦아 주는 것은 상처 위의 진물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흘리는 눈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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