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평생의 천직 2020.09.16

평생의 천직 - 신·췌장이식외과 권현욱 교수

 

일과를 마친 저녁, 권현욱 교수는 급히 고대안산병원으로 향했다. 장기 적출 후 병원에 돌아오니 새벽 2시.
곧바로 들어간 신·췌장 이식 수술은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죄송합니다. 수술을 마치고 오느라고….”
오전 외래를 기다리던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예전에 밤새 이식 수술을 받았던 환자들은 이내 이해했다.
하루를 훌쩍 넘긴 업무는 수술한 환자를 확인하는 일로 마무리됐다. 소변과 혈당 조절이 이제 잘 된다며 환자
어머니는 감사 인사를 건넸다. 몸은 천근만근이어도 권 교수의 마음만은 가뿐했다.
 

조금 늦은 시작

스물여덟 살에 의대에 입학했다. 공대 입학과 군 제대 후 유학을 준비하다가 뒤늦게 재도전한 결과였다. 어릴 적부터 일가친척이
모이면 온통 의료 현장 이야기였다. 대부분 의사였기 때문이다. 어린 권 교수에게 의사는 선망의 대상이자 꿈이었다. 그러나 의대와는
인연이 쉽게 닿지 않았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20대 내내 콤플렉스가 되었다.

“인생의 모든 선택을 이성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본능이 앞설 때가 있잖아요. 그 길만 있는 것도 아닌데 꼭 의사를 하고
싶고, 힘든 걸 알면서도 외과를 선택했죠. 그것도 밤낮 없는 수술 스케줄에 다들 기피하는 이식팀을요.”


함께 유학을 준비했던 아내는 피아노 학원을 차려 권 교수를 뒷바라지했다. 인턴 지도교수였던 이승규 의료원장은 외과 추천서를
써주었다.

“가장 가까운 아내, 멋있는 어른의 응원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남보다 한참 늦었지만 의료 현장은 나이를 잊게 했다. 오히려 많은 사회 경험은 원활한 소통에 유리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만족감은 앞만 보고 달리는 동력이 되었다. 은사인 혈관외과 조용필 교수는 열성을 다해 가르쳤다. 바쁜 와중에도 논문 과제는
끊임없었다. 전공의, 펠로우 기간 내내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에 꼽혔다. 세 아이의 아빠 역할도 잠시 제쳐둔 채 말이다. 모교 병원에
좋은 기회가 닿아 자리를 옮기면서도 서울아산병원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이식 수술엔 김영훈 교수가 와서
참관해 주었다. 조용필 교수와는 논문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수술을 직접 해보니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치열하게 버틴 끝에 원하던 일을 하게 된 거죠. 이식 경험을 더 쌓고 싶어서 펠로우를
조금 더 한다는 각오로 서울아산병원에 촉탁의로 돌아왔습니다.”

 

노력의 대가

 

절대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있다. 뇌사자 정보를 눈여겨 보지 않고 적출 수술에
들어갔던 날이다. 수술을 마치고 포를 걷는데 천진난만한 아이 얼굴이 보였다.

“딱 제 아들 또래였어요. 가족 여행을 갔다가 물에 빠져 뇌사한 케이스였죠.
새벽녘에 기증 장기를 가지고 오면서 ‘내가 부모라면 기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스쳤어요. 선뜻 답할 수 없었죠. 죽어가는 장기를 재창조해내자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신·췌장 이식을 받는 환자층은 소아부터 노년까지 폭넓지만 수술 후 반응은
하나같이 좋다. 달라진 컨디션과 일상의 삶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상처에 예민한 기증자를 만나면 배꼽에 4cm 정도의 구멍 하나로 수술한다.
기존의 7cm의 상처와 두 개의 구멍을 통한 수술에 비하면 훨씬 힘들고 시간도
더 걸리지만 기증에 대한 예우에서다.
신장 부위를 다루는 권 교수에겐 후복막암 환자가 많이 찾아온다. 일반 외과
의사들은 접근하기 힘든 부위여서 수술해 줄 병원이 흔치 않다. 권 교수는
수술 전 큰 혈관을 미리 파악한다. 신장과 혈관에 닿아있는 큰 혹을 떼려면 중요
혈관부터 잡고 출혈 시간을 최소화해야 승부가 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피가 터지면 저 역시 긴장되고 무서워요. 빠른 판단력으로 종양을 떼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수술 후 새 삶을 사는 것 같다는 후복막암 환자들의 칭찬은 고객칭찬상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쌓은 노력의 대가였다.
 

 

든든한 일원

수술을 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만난다.

“그때마다 우리 병원의 장점을 크게 느낍니다. 누구 한 사람이 우수한 것보다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내·외과 모두 믿고 맡길
수 있거든요. 저 역시 동료에게 믿음을 주는 의사이자 병원의 든든한 일원이 되고 싶어요.”


전공의 때와 같은 마음과 자세를 늘 유지하려는 이유다. 다행히 그런 모습을 환자들도 반기는 듯하다. 격의 없이 질문하며 마음을 연다.

“언젠간 이식 환자의 장기생존율을 높일 면역거부반응 억제 방법을 찾고 싶어요. 제가 쉬지 않고 논문 쓰는 열정만큼은 자신 있죠.”

의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욕심은 20대의 호기가 아니었다. 지난 행보와 지금의 표정에서 평생의 천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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