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심장을 뛰게 하다 2017.07.05

심장을 뛰게 하다 - 흉부외과 정성호 교수

 

환자의 보호자를 만났다.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아들은 심부전을 앓았다. 더 이상 약물로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결국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처음으로 아들을 보러 간 날이었다. 아들의 방 앞에 서 있던 의사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제가 아드님을 수술한 의사입니다.”
보호자는 그 모습이 수술은 잘 끝났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미소의 주인공은 흉부외과 정성호 교수다.


책임감의 무게

컴퓨터 공학과에 낙방했다. 낙심한 그에게 형님이 후기 대학 지원을 권했다. 의대에 지원했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재수는 할 수 없다”라는 형님의 말에 의대에 들어갔다. 처음엔 말수 적고 수줍음 타는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강제로 과대표를 떠맡지 않았다면 지금도 부끄러움 많은 의사였을지 모른다. 학생회 활동을 통해 시야와 삶의 폭을 넓혔다.
본과 4학년 때는 스스로 선거에 출마해 과대표에 당선됐다. 열심히 익히고 공부해 모교로 돌아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서울에서 가장 이름난 병원에 지원했다. 1997년 인턴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왔다. 1998년 흉부외과 전공의를 시작하고, 2009년
심장이식 수술을 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심장 수술을 책임지는 명의들 아래서 심장수술의 ABC를 배울 수 있었으니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그는 심부전ㆍ심장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심장이식을 시작한 병원이자
현재까지 수술 대다수를 책임지고 있는 병원’이라는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


기다림 끝에 얻은 삶

 

흉부외과 정성호 교수의 주전공은 성인심장질환. 주로 판막수술과
성인 심장이식 수술을 한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약 160건의 심장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전체 심장이식 건수가 1200례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다. 다른 장기에 비해 심장이식 건수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심장은 단 하나뿐인 장기인 데다 수술은 뇌사자 기증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장이식의 가장 큰 어려움은 기다림이다.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은
환자가 기증자를 기다리다 끝내 세상을 뜨는 현실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30대 심부전 환자였다. 환자는 외부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점점 악화돼 결국 심장이식을 받아야만
했다. 수술한 부위가 감염된 상태라 바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흉골을 열고 감염 치료를 하고 나서야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기능에 이상이 나타났다. 기증자의 심장 상태 때문이었다. 증상이 미약한 데다
아주 간헐적으로 보여 초음파 검사 결과로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 번의 간절한 기다림 끝에 환자는 재수술을 받았다.


또 다른 길을 만나다

수술의 높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기증자, 기증한 심장의 상태 등 여전히 그에게는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의 관심사는 ‘인공심장’ 수술이다. 지금까지 약물로도 견딜 수 없는 중증 심부전 환자의 치료방법은 심장이식뿐이었다.

최근 또 다른 치료 방법이 등장했다. 바로 ‘인공심장’ 이식 수술이다. 인공심장은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거나 환자의 상태로 인해
심장이식을 받을 수 없는 경우 또 하나의 심장 역할을 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수차례 진행된 방법이다. 새로운 장치를 시도하기 위해 2013년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으로 연수를 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연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심장의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환자의 부담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식을 기다리다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안타까운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 교수는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우리나라에 정착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주변 동료들은 그를 책임감이 강한 의사라고 입을 모았다. 수술실에서도 외래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자들은 그를 설명 잘하는 의사라고 했다. 아무리 힘든 상태여도 다음 진료 때는 책과 자료를 뒤져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다. 환자의 믿음이 클 수밖에 없다.
정작 정 교수는 환자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생명을 놓치는일 이 없도록 그는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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