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을 이식받은 지 한 달이 지났어요. 저는 수술 받고 이렇게 쌩쌩한데 기증해 준 아버지는 아직 힘들어하세요. 미안해 죽겠어요!” 경석(여, 34) 씨는 아픔이란 일절 모르는 사람처럼 밝았다. 아버지와의 격의 없는 표현에서 살가운 관계를 그려보는 사이, 경석 씨는 꽤 시리고 아픈 성장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잘 웃는 사람일수록 눈가에 더 많은 주름이 깊이 자리 잡는 것처럼 말이다.
“아빠 어디가”
1998년 12월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 경석 씨의 아버지는 선교를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경석 씨는 하교 후에 아버지의 빈 자리를 깨닫고 며칠을 울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남은 집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3년 뒤 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땐 새엄마와 이복동생, 낯선 언어가 기다렸다. 아버지는 평일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돈을 버느라, 주말이면 교회 일로 함께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당시 아버지는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위기도 넘기며 가족과 선교를 위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청소년기에 막 접어든 경석 씨 역시 계속되는 목마름과 빈혈, 체중 저하로 몇 번씩이나 쓰러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간 지 2년 만에 소아당뇨를 진단받았다. 하루 4번 인슐린을 맞으며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해도 언제나 지는 싸움인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한 경석 씨는 한국에 여행을 왔다가 고향인 거제도에 정착했다. 타향살이의 긴장감 없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는 생활이 퍽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눈앞에 검은 점이 아른댔다. 시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당뇨 합병증으로 망막이 손상되는 당뇨망막병증이었다. 병원에선 신장도 문제지만 자가면역질환으로 췌장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이식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일을 그만두고 1년 11개월간 췌장 이식을 기다렸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 이식을 받은 후에는 거부 반응으로 식욕 부진과 장염 증상에 시달렸다. 서서히 나아졌다 해도 완전한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다. 급기야 2021년 코로나에 걸리면서 신장까지 완전히 망가졌다. ‘어떡하지?’ 앞이 캄캄했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아버지였다. 경석 씨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아버지는 침착하게 딸을 안심시켰다. “경석아, 아무 걱정하지 마. 내 신장을 줄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
아버지가 급히 한국에 와서 신장 기증을 위한 각종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경석 씨의 B형 항체 과다로 이식은 불가능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아버지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야 했고 경석 씨는 피하고 싶던 투석을 시작했다. 하루 걸러 투석 받는 생활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상태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을 거라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2022년 말 아버지가 잠시 한국에 올 기회가 생기면서 경석 씨는 서울아산병원에 급히 예약을 잡았다. ‘여기서도 안되면 방법이 없는 거겠지.’ 거제도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서울로 향하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신·췌장이식외과 신성 교수는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번 해보자고 했다. 장기이식센터에선 그보다 훨씬 높은 수치의 환자도 회복된 사례가 있다며 긍정적인 힌트를 주었다. ‘그래, 서울아산병원이 못할 리가 없어. 교수님이 최악의 상황부터 들려준 걸 거야.’
2024년 1월 10일. 수술일이 잡혔다. 그런데 수술 전 검사에서 가슴에 비정상 세포를 발견했다. 신장 이식이 또다시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암이 아니기만 바라며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계속된 혈장교환술에도 항체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수술 일정은 계속 연기됐다. 2월 10일. 수술이 진행되기 전날까지 아무도 수술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다.
뒤늦게 알게 된 외로움
경석 씨가 신장이식 국가승인절차를 밟기 위해 사회복지팀 박종란 의료사회복지사와 만났을 때다. 그동안의 병력과 가족 관계, 자라온 환경 등을 이야기하자 경제적 어려움을 먼저 살펴 주었다. 그리곤 병원 직원들이 모은 기부금으로 경석 씨와 아버지의 수술비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저를 돕는다고요? 제가 무슨 자격으로요?” “그건 경석 님이 열심히 살아오셨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복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수술을 잘 한다기에 찾아온 병원에서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없도록 애쓰고 있었다. 회진 때 만난 신성 교수는 잘 치료되기를 기도하고 있다며 용기를 주었다. 늘 혼자였던 경석 씨 곁에 누군가의 기도와 경제적 지원,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고통도 만성이 됐는지 나는 늘 아프게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 내가 힘든 만큼 다른 사람은 다르게 힘들겠지… 하면서 지냈어요. 되돌아보니 참 많이 아팠는데 혼자서 애써 참았구나 싶어요. 조금 외로웠거든요.”
술술 풀리는 인생
이식 후 경석 씨는 소변도 잘 보고 컨디션도 금방 회복됐다. 수술 전만 해도 췌장을 이식받을 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떨고 있는 경석 씨에게 “잘 끝날 거야. 수술이 잘못되더라도 천국에 가면 되지!”라며 밝게 응원하던 아버지가 되려 회복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픈 배를 쥐고서 “내 딸 장하다”라고 읊조리는 아버지를 놀리던 경석 씨는 평생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실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잘 몰랐던 것뿐이란 걸 알게 됐다. 할머니와 고모들이 품어온 ‘딸을 맡기고 멀리 떠난 장남’이라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도 신장 이식을 계기로 씻겨 내렸다. 경석 씨는 질병이 꼭 인생의 좌초만은 아니더라고 말했다. “모든 문제는 포기하지만 않으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에게 이런 날도 온 거고요. 이제 스페인어 선생님이자 이준호 씨의 건강한 딸로 다시 시작할 거예요.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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