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고양이와 정신건강 ①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2025.12.06

<이야기가 있는 산책>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

 

 

(AI 활용 일러스트 ⓒ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고양이와 관련된 어릴 적 아픈 기억도 떠오른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는데, 내가 노느라 한눈을 판 사이에 그 고양이가 묶여 있던 평상에서 미끄러져 목줄에 걸려 숨지고 말았다. 분명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놀기에 정신이 팔려 고양이에게 가지 않았던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고양이의 죽음을 마주하고는 후회하며 통곡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기까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은 암컷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딸아이를 위해 아내가 자신의 사촌동생에게서 입양했다. 이름이 그 아이의 운명을 결정한다기에 행복하게 살라는 뜻에서 ‘행복이’라 붙였다. 그러나 정작 행복한 것은 우리 가족이었다. 행복이가 그동안 우리에게 가져다준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왼)행복이. 코리안 쇼트테일 삼색고양이다. (오)행복이와 딸아이의 발. 나란히 누워 있는 이 둘을 사진에 함께 담는 기쁨이 크다.

 

침팬지를 평생 연구해 온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인간이 개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 아니고,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침팬지가 아니라 행복이를 통해서 이 말이 사실임을 배웠다. 보통 고양이를 묘사할 때 ‘까칠하다’ ‘도도하다’ ‘우아하다’ 등의 표현을 쓴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의 개성이 위의 세 표현의 적절한 비율의 합으로 나타난다고 한다면, 행복이는 그중 까칠함의 비율이 유독 높다고 할 수 있다. 길고양이인 어미에게서 태어나서 그런지 낯선 사람들에게는 아예 곁을 주지 않는다. 낯선 이에게는 너무 사납게 굴어서 수의사들조차 진땀을 흘리고 진료를 포기하곤 했다. 어디에 맡긴다는 것이 도대체 불가능해서 가족이 모두 여행이라도 가려고 하면 자동 급식 체계를 완비하고 집에서 행복이 혼자 지내도록 한다.

 

평상시에는 동거인들에게 시큰둥한 행복이가 여행 전날에는 가방 위에 올라가서 - 마치 자신도 데리고 가라는 듯 - 시위를 한참 하더니 언제부턴가 포기하고 동거인들이 여행을 가든 말든 나와 보지도 않는다. 행복이 때문에 보통은 길게 여행을 가지 않는데, 이제 모두 대학생이 된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기 위해 더웠던 이번 여름 길게 해외를 다녀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마도 하도 울어서) 목이 쉬어 버린 행복이를 보고는 장기간 여행은 다시는 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융 심리학에서는 콩쥐팥쥐, 흥부놀부전과 같은 민담을 통해 인간 심리의 근본적인 성향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해결책을 배울 수 있다고 본다. 민담의 내용은 (지금은 채록, 활자화 됐지만) 원래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내용은 사라지고 인간사의 근본적인 것만 남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민담이 인간사와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 속에는 정해진 정답이나 패턴이 없다는 것이다. 민담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 같은 행동이더라도 맥락과 환경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절대로 화를 내면 안 되지만, 어떤 이야기에서는 화를 내야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된다. 어떨 땐 정직해서 살아남지만 어떨 땐 정직함 때문에 죽기도 한다. 그러나 민담을 연구한 융의 제자 폰 프란츠Marie-Louise von Franz에 따르면 민담에도 예외 없는 법칙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동물에게 잘하면 복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환자로 만나면 나는 속으로 실망하고 움츠러든다. 대개 예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커다란 희망을 본다.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왜 나쁘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바로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학대하면 즉시 자신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게 되고 결국은 자신의 정신 전체를 망가뜨리게 된다. 현대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동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고 산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실로 많은 심리적 유용성이 있다. 특히 고양이를 키우면 - 아니 고양이와 같이 살면 - 사람의 성격이 천천히 달라진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고양이들은 해내는 것 같다. 지구의 길고 긴 역사에서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살게 된 것은 불과 몇 천 년 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양이는 여전히 야생이며, 인간이 아무리 먹이를 주고 모래를 갈아줘도 인간에게 굽신거리지 않는다. 행복이도 그렇다. 아무리 잘해주는 ‘고양이 집사’에게라도 필요하다면 할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또 금방 다가와 머리를 비비며 가르랑거린다.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고 눈치를 보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주장할 줄 모르던 우리 아이들도 행복이와 함께 자라면서 달라졌다. 도도하고, 우아하고, 특히 많이 까칠하게.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