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8일 외과계중환자실1에서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장(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한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모습.
1989년 개원 후 한순간도 불이 꺼지지 않은 곳,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이 35주년을 맞았다. 통합중환자실 12병상으로 시작해 지금은 15개 중환자실 253병상을 갖춘 국내 최대, 최고의 중환자실로 발전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낮은 중환자 치료수가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모든 중환자실에 격리 병상을 70% 이상 만드는 등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중증질환 중심의 진료 수준을 높여왔다. 홍석경 중환자실장(중환자·외상외과 교수)은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다학제 협진을 통해 장기이식과 암·심뇌혈관 수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고난도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은 초창기 국내 중환자의료체계의 초석을 다졌고, 이후 국내에서 유일하게 각 전문 과목 중환자전담전문의가 책임의사를 맡는 등 최고 수준의 집중 치료 시대를 열었다. 중환자실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매 순간 소생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최고의 치료를 위한 소통과 협업
‘삐-삐’ 날카로운 알람 소리와 함께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폐동맥 혈전내막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인데 우심부전과 폐 합병증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곧바로 심장혈관흉부외과, 호흡기내과, ECMO팀 등 관련 의료진이 모였고 비침습적 기계환기, 체외막산소요법, 고농도 스테로이드 치료 등이 빠르게 이뤄졌다. 환자가 안정을 되찾자 의료진은 숨을 크게 한번 내쉰 뒤 도움이 필요한 다른 환자에게로 각자 잰걸음을 옮겼다. 다양한 기전의 고위험 환자가 모여있는 중환자실에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는 다학제 협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면회를 온 보호자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환자와 공감하며 복잡한 기전을 정확히 파악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두의 경험과 지혜를 모아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낼 때 보람을 느낀다.” – 안지환 책임교수(내과계중환자실1)
“중환자실은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곳에선 의료진의 모든 결정과 행동이 환자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양한 의료진이 협력하고 소통하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 김모이네 중환자실전담전문의(신경외과중환자실)
▲ 10월 8일 외과계중환자실1에서 중환자간호팀 한승리 주임, 중환자·외상외과 이학재 교수, 김혜빈 전문의(왼쪽부터)가 환자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느끼는 책임감
이혜린 대리(내과계중환자실2)가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담당 환자를 등록하는 것이다. ‘내 환자’가 된 순간, 그 환자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다. 그로 인해 지워진 책임감은 환자에게 나타나는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고도의 집중력과 세심함으로 이어진다. 이날 이 대리는 여느 때처럼 담당 환자들의 활력 징후를 파악하던 중 신체보호대를 착용한 환자가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보호대를 풀어보니 뇌손상 시 발생하는 제뇌경직자세를 하고 있었고, 즉시 CT 촬영을 한 결과 뇌출혈과 뇌부종이 발견돼 응급수술이 진행됐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환자 안전을 이루는 밑바탕이 된다.
“내가 수행하는 간호가 이 환자에게는 삶의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다는 책임감을 가진다. 환자가 끝까지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간호를 하겠다고 늘 다짐한다.” - 김보라 과장(심장내과중환자실)
“중환자실에 온 환자는 보호자 없이 낯선 의료진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 간호사이자 보호자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고 어떻게 대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 박영 유닛 매니저(내과계중환자실1)
▲ 10월 8일 외과계중환자실1에서 중환자간호팀 정재슬 주임, 재활의학팀 박수영 주임(왼쪽 첫 번째, 세 번째)이 재활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배움과 성장
새벽 5시 30분, 중환자·외상외과 김혜빈 전문의의 일과가 시작된다. 오전 회진, 입실 환자 확인, 보호자 면담, 응급 수술, 오후 회진 등 눈코 뜰 새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매일 어떤 중증환자를 만나게 될지, 언제 어디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바쁜 몸과 마음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순간의 판단이 환자의 평생을 좌우하고,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래서 중환자실은 두려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긴장감 속에서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냉철한 의학적 판단, 신속하고 적절한 처치를 하려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김혜빈 중환자실전담전문의(외과계중환자실1)
김다혜 대리는 MET(의료비상팀) 소속이다. 급성악화 환자가 발생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MET 카트와 함께 움직인다. 카트에는 응급의약품, 간이 진단검사 기계, 비디오 후두경, 휴대용 초음파 등이 담겨 있다. 언제, 어떤 환자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크다. 이를 극복하고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중재를 하기 위해선 다양한 질환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예측할 수 없는 매 순간이 도전이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식을 확장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김다혜 대리(MET)
▲ 10월 8일 심장내과중환자실에서 중환자간호팀 김수지 주임, 호흡기내과 박소희 교수, 중환자간호팀 김다혜 대리(왼쪽부터)가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환자·보호자 마음에 공감하며
인공호흡기 소리가 자아내는 긴장감 속, 다른 한쪽에선 미소를 짓게 하는 애니메이션 ‘콩순이’ 노래가 흘러 나온다. 신생아중환자실은 고위험 미숙아와 신생아들이 건강하게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치료를 받으며 머무는 곳이다.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아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간호사들은 산소요법, 저체온요법, 교환수혈 등 간호 외에도 치료 목표 중 하나인 성장발달을 위해 근무 시간 동안 12~15번의 젖병 수유를 한다. 팔다리도, 어깨도 아프지만 출생 직후 생사를 오간 급성기 시절과 이를 옆에서 바라봐야만 했던 부모들의 슬픔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낸다. 중환자실은 의료적 처치를 넘어 환자와 가족이 겪는 극도의 불안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품을 떠나 우리 중환자실에서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맡은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는 의료진 모두가 정성을 다해 함께 돌보고 키웠다는 연대감을 느낀다.” - 박미정 주임(신생아중환자실2)
▲ 10월 14일 신생아중환자실1에서 어린이병원간호팀 이재준 주임이 환아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박승일 서울아산병원장은 “지난 35년간 서울아산병원이 장기이식 등 고난도 수술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중환자실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에 참여해 중증환자 중심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앞으로도 서울아산병원이 중증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는 병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관련 의료진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