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종종 백혈병과 유사한 혈액검사 결과를 보이지만 백혈병이 아닌 환자를 만날 때가 있다. 골수증식종양 환자다. 골수에서는 조혈모세포가 분화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같은 혈구세포를 만드는데, 조혈모세포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혈구세포를 지나치게 많이 만드는 만성 혈액질환이 골수증식종양이다. 세부 아형으로 진성적혈구증가증, 본태성혈소판증가증, 일차골수섬유증이 있다. 골수증식종양은 혈액암은 아니지만 산정특례가 적용될 만큼 추후 암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피로감·멍·비장비대, 알아두어야 할 신호
골수증식종양은 비특이적인 증상을 유발한다. 골수에서 조혈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골수 이외의 부위에서 조혈 작용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으로 비장이 있다. 비장이 과부하를 받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조기 포만감, 복부 불편감 등을 호소한다.
두통, 어지러움, 안면 홍조, 가슴 답답함, 손·발끝 통증, 혈전 등이 또 다른 증상이다. 혈색이 좋아진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적혈구가 과도하게 많아져 생긴 안면 홍조일 수 있다. 또한 전신 염증으로 뼈 통증, 발열, 체중 감소, 가려움증, 야간 발한(속옷이나 잠옷이 젖을 정도의 땀)이 있다.
건강검진이나 진료 시 피검사에서 혈구 수치 이상으로 혈액내과를 방문하는 환자가 대다수다. 자각 증상이 없어도 건강검진에서 복부 초음파를 시행했을 때 비장 비대가 확인되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증상들이 비특이적이다 보니 골수증식종양이라는 것을 환자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진단과 검사부터 단계별 치료까지
골수증식종양을 진단할 때 임상적 증상과 혈액검사 외에 혈액 생성에 관여하는 JAK2, CALR, MPL과 같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지 확인한다. 확진 및 세부 아형 확인을 위해 골수검사를 추가로 진행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위험군, 중간 및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후 각 환자에 맞춰 치료를 시행한다.
진성적혈구증가증과 본태성혈소판증가증의 경우에는 위험군에 따라 아스피린, 사혈, 세포감소항암제를 사용한다. 일차골수섬유증의 저위험군인 경우에는 지지요법을, 고위험군에는 표적항암제(룩솔리티닙 혹은 페드라티닙)를 사용하거나 연령, 동반질환,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해 적절한 시점에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진행한다.
혈전과 출혈, 백혈병 악화까지
치료 방법은 환자가 속한 위험군에 따라 달라지지만, 모든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장기화될 수 있는 합병증 관리다. 골수증식종양은 만성적으로 진행되는 혈액 질환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혈관을 막거나 출혈을 일으키고, 일부는 더 무거운 병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한 연구에서도 이러한 위험성이 수치로 확인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활용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골수증식종양 환자 1만 1,991명을 분석해보니 골수증식종양 환자가 일반인보다 혈전, 출혈, 백혈병 악화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먼저 동맥혈전증이 발생할 위험은 약 70% 더 높았다. 동맥은 심장에서 온몸으로 피를 보내는 혈관이다. 여기에 혈전이 생겨 막히면 주요 장기에 혈액 공급이 어려워지고,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 다음으로 정맥에 혈전이 생길 위험은 약 97%로 더 높았다. 우리 몸의 피를 다시 심장으로 돌려보내는 정맥에 혈전이 생기면 주로 다리 붓기나 통증이 나타나고 심하면 폐색전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혈전뿐 아니라 코피나 멍이 쉽게 드는 등 잦은 출혈의 위험도 골수증식종양 환자가 일반인에 비해 71.4% 더 높았다. 더 나아가 골수증식종양으로 진단받은 환자 100명 중 6명이 10년 안에 급성백혈병으로 진행되거나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골수증식종양은 조기 진단과 위험군별 맞춤치료, 그리고 장기적 합병증 예방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추적 관찰과 지속적인 합병증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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