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환자들은 묻는다. 완치되지 않는 암을 왜 치료해야 하는지.
“예전에는 암에 걸리면 기대 여명을 답했지만 지금은 달라요. 암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만성화시켜 약을 먹으며 조절할 수 있습니다.”
독한 암과의 싸움에 도움을 드리겠다는 다부진 의지로 혈액내과 허준영 교수는 늘 이야기한다.
“암에 걸렸다고, 평생 치료받아야 한다고 기 죽지 마세요. 시작이 반입니다. 오늘 치료를 시작하면 이미 반은 하신 거예요.”
평생에 걸친 환자 맞춤 치료
의대생이던 시절, 실습하며 림프종 환자가 완전 관해된 모습을 처음 봤다. 암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후 림프구성 질환 치료에 매진해 림프구성 백혈병, 림프종, 다발골수종을 주로 치료하고 있다. 스테로이드 만으로도 반응이 좋은 질환이지만 반짝 좋아지는 장점 이면에는 재발이 잘 된다는 단점이 있다.
“빠른 항암 효과에 환자들의 신뢰를 빠르게 얻지만 재발했을 때 환자들의 더 큰 실망감을 만나게 돼요. 항암 치료에도 살아남은 소위 미세잔존암은 더 독하고 안 좋은 예후를 보일 수 있거든요. 환자들을 어떻게 평생 끌고 갈 것인지가 제 숙제죠.”
조혈모세포이식에 대한 기대를 갖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혈액암은 암세포를 줄이지 않은 상태로 이식하면 역효과가 크다.
“동종 이식은 힘든 치료이기도 하고 부작용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치료 효능은 더 높일 방법을 찾는 한편, 이식을 두 번 이상 진행한 환자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환자 면역 세포를 이용한 세포 면역 치료가 발전하면서 환자 개인 맞춤으로 치료 기조가 바뀌고 있다. 다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최신 치료를 적용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30년 이상 된 약이 아직까지 표준 치료라는 점이 항상 안타까워요. 그래도 서울아산병원은 임상시험도 할 수 있고 최신 치료를 적용해 볼 여지가 좀더 넓죠. 앞으로 림프구성 질환 치료는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봐요.”
공감이 먼저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부모님 뜻을 거스른 게 의대 입학이었어요.” 작은 진료실에서 아픈 사람만 봐야하는 일의 어려움이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의대에 진학한 이후에 많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자금과 생활비를 벌었다.
“틈틈이 부모님의 슈퍼마켓 카운터를 지키며 시험 공부도 했어요. 다정한 손님도 있지만 극빈한 분들, 거짓말 하는 청소년, 행패 부리는 취객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죠. 그때의 경험이 환자를 조금 더 살피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살 만큼 살았으니까, 자녀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부작용이 염려돼서 등 다양한 사연에 허 교수는 귀를 기울인다. 공감하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환자들이 먼저 생각을 돌리기도 한다. 최근 항암 치료를 받지 않겠다던 림프종 환자가 있었다. 거의 간부전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치료가 부담스러운 점도 있지만 생명 연장을 원치 않아 했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일렀다. 자녀들과 함께 설득에 나섰다. 그렇게 항암 치료를 진행하자 병세는 단번에 좋아졌다. 허 교수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분위기는 역전됐다.
“환자분이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면서 모든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겠다고 하셨어요. 일찌감치 작성해둔 연명 치료 거부 동의서도 철회하고요. 누구에게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지 몰라 더 재미있는 분야인 것 같아요.”
의사 본연의 사명에 집중하고 싶어
최선의 치료에도 병세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는 의학적, 사회적 통합 서비스를 안내하고 존엄한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치료 계획을 상의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저를 만나러 오셨다는 환자분들이 있어요.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죠. 살고자 하는 분들께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을 고민하죠. 때로 희망고문보다 솔직한 권유가 필요하기도 하고, 환자 맞춤 진료를 위해 더 예민하게 선별하는 과정도 중요해요. 혈액내과 환자분들은 감염에 취약해서 매번 장갑을 끼고 손을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악수를 청하고 등을 토닥여요. 한마디 말보다 더 많은 위로가 될 테니까요.”
인턴을 시작할 때 앞으로의 목표를 질문받고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대답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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