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관 내 유두상 종양을 진단받은 이윤형(63) 씨에게 몸의 변화뿐 아니라 정신적 충격과 경제적 위기가 차례로 찾아왔다.
머릿속의 좁은 반경에서 그려온 여생은 무수한 변수로 인해 깨지고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삶의 가능성은 가장 커졌다.
질병 너머의 삶이 그를 기다렸고 회복하며 얻은 자신감은 다시 달릴 힘이 됐다.
자신만만했던 삶이 막을 내렸다
2017년, 윤형 씨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잠에서 깼다. 땀방울이 온몸에서 말 그대로 뿜어 나왔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공포와 불안이 몰려 왔다. 난생처음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도 가봤다. 특별한 진단 없이 통증이 사그라지면서 잠깐의 해프닝으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통증과 공포가 찾아왔다. 이번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1부터 10까지 통증 정도를 묻는 의료진의 질문에 “10이요, 10”을 다급히 외쳤다. 이대로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췌관 내 유두상 종양이라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췌장 안에서 점액을 만드는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유두 형태의 종양을 만드는 질환이었다. 췌장암으로 진행되기 전에 발견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간담도췌외과 송기병 교수는 수술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불안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 내렸다. 혹시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는 아내와 두 딸에게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사는 거지 뭐”라며 큰소리쳤다. 수술 직전까지 흡연을 하다가 송 교수에게 들켜 이러면 수술해 줄 수 없다는 나무람을 듣기도 했다.
보름 정도 입원해 염증을 없앤 뒤 췌십이지장절제술을 받았다. 수술을 잘 마치고 병실로 올라오자마자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출혈이 이어졌다. 병동 관찰방에서 3일을 보내는 동안 평생 자신이 알던 몸이 아닌 듯했다. 이후로도 두유 하나 다 마시지 못할 만큼 입맛은 뚝 떨어졌고 아무런 의욕이 느껴지지 않았다. 체중은 금세 20kg 가량 빠졌다. 2018년 4월의 일이었다.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달 넘게 병상에 누워있으니 거동조차 힘들었다. 엉덩이 근육만 빠져도 불쾌한 컨디션이 이어졌다. 걸음 하나 제 맘대로 옮기지 못하는 데서 큰 충격을 받았다. 잃어본 후에야 평생 생각해 본 적 없는 몸의 기능들을 알 수 있었다. 수술 목표는 이미 완수했으니 일상으로의 회복은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던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먹방 프로그램을 찾아보며 꾸역꾸역 끼니를 챙겼다. 식단은 건강한 것들로만 채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은 단번에 끊었다. 첫날은 10걸음, 다음 날은 50걸음, 그리고 100걸음…. 매일 조금씩 늘려 걸었다.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체력은 조금씩 돌아왔고 마음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렇지만 건강에 집중하는 사이에 통장 잔고는 바닥나 있었다. 호된 계산서를 받아든 기분이었다.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택시 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30개월 무사고면 개인택시도 운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간담도췌외과 송기병 교수(왼쪽)과 진료실에서 함께
눈물과 희망을 안고 달리는 택시
“서울아산병원이요.” 택시에 탄 손님의 목적지가 익숙하면서도 반가웠다. 다만 유난히 낮은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백미러로 본 손님의 눈가에는 역시나 눈물이 고여있었다.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족이 췌장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손님은 고인 눈물을 터뜨렸다. 울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택시 안은 고요한 모래사막이 되어 주었다. 흠뻑 적셔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손님, 저 어때요? 건강해 보이죠? 저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고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택시에서 실컷 우시고 병원에 들어가면 의료진만 믿어보세요.” 서울아산병원이 보이는 길목에 다다르자 윤형 씨는 예전에 수술받았던 부위가 욱신거렸다. 신기하게도 몸의 기억이란 게 있었다. 병원을 향하는 손님들에게 마음을 보탤 수 있는 건 아팠던 기억과 회복의 안도가 몸에 새겨졌기 때문인 듯했다.
어떤 손님은 췌장암 2기라며 입원하러 가는 길에 만났다. 다른 부위면 몰라도 췌장이나 담도 이야기가 나오면 윤형 씨는 서울아산병원 송기병 교수님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냈다. “나보고 서울아산병원 신봉자냐고 놀려도 어쩌겠어요. 송 교수님 덕분에 이렇게 신나게 운전하고 있는데~” 통증과 치료 과정, 병원에 관한 경험담을 나누는 것만으로 환자나 보호자들에겐 위로가 되고 있었다. 좋은 마음을 먹어서인지, 하늘이 도운 덕분인지 윤형 씨는 택시 회사 내에서 늘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운수업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까탈스럽거나 술 취한 승객을 만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다. 목표한 30개월 하루가 지나 지난해 11월. 윤형 씨는 꿈에 그리던 개인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오늘도 윤형 씨는 새벽부터 여러 약속과 사연, 표정을 실어 날랐다. 하루해가 저무는 시간, 서울아산병원에 손님을 내려주고 천호대교를 건너며 환상적인 일몰에 시선을 빼앗겼다. 과거 자신의 눈으로 보기도 하고, 아픔을 겪고 있는 손님들의 눈으로 보기도 했다. 아프거나 서럽고, 혹은 기쁜 날에 마주했던 이곳 풍경이 모두 겹쳐졌다. ‘행운과 불운을 자로 잰 듯 가늠할 수 있을까?’ 윤형 씨는 그 답을 알 것만 같았다. 돌아보면 하루도 버릴 날이 없었다고.
“서울아산병원에 올 때는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이곳을 떠날 때는 모든 게 다시 시작되고 있었어요.
내 삶을 다시 산다는 생각이 들면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돼요. 그래서 오늘도 아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관련 의료진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