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연구이야기 지능을 갖춘 수술로봇의 미래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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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공학연구소 최재순 교수
 

심혈관 중재시술 로봇, 의료 인공지능 임상평가,
카테터 제어, 디지털 트윈, 의공학연구소장

 

 

‘수술로봇 개발자가 돌아보는 10년’ 편에 이어서

 

휴머노이드 로봇과 수술로봇: 범용성과 전문성의 균형

피지컬 AI의 시대,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은 아주 놀랍습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인간의 말을 이해하며 하루가 다르게 더욱 복잡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환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재활 훈련을 돕고, 무거운 물품을 운반하는 등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래 의료 현장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고도로 전문화된 수술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수술로봇이 앞으로도 분명한 존재의 이유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멀쩡한 세탁기를 두고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손빨래를 맡길 이유가 없듯 말이죠.

 

심장 혈관처럼 미세하고 복잡한 구조를 다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손, 또는 그보다 더 작고 정교한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변화무쌍한 수술 상황에 정확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에 특화한 센서와 알고리즘이 해답이 될 수 있죠. 범용성을 지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수술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각자 영역에서 자신의 임무에 최적화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향일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전문성 대 범용성의 논쟁에 실험적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가 최근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7월,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의 로봇공학자 마이클 입(Michael Yip) 교수팀은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수술실에 적용하는 연구를 국제학술지「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소개했습니다. 연구팀은 휴머노이드 로봇 ‘유니트리 G1’에 양팔 원격 조종 시스템을 접목한 ‘서지(Surgie)’를 개발하고, 초음파 프로브 홀딩, 응급처치, 정밀 바늘 시술 등을 원격 조종으로 수행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나아가 후속 연구인 ‘랩서지(LapSurgie)’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복강경 기구를 직접 잡고 수술을 수행하는 프레임워크를 최초로 제시했습니다.

 

마이클 입 교수팀이 개발한 의료용 휴머노이드 로봇 ‘서지(Surgie)’가 청진, 임산부 복부 촉진, 백밸브 마스크를 이용한 인공호흡, 기관 내 삽관, 기관  절개, 매듭 봉합, 초음파 유도하 약물 주입 등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모습.

 

 

입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수술 자체를 수행하기보다는 초음파 프로브나 내시경을 잡아주는 일, 기구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일 등 저위험·고빈도 보조 업무에서 먼저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고정밀 시술은 전문 수술로봇이 담당하고, 범용 휴머노이드는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두 로봇이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원격 수술과 수술로봇: 미충족 수요의 궁극적 해결

최근 원격 수술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로봇수술 네트워크와 보안 기술에 특화된 스타트업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 우수한 의료 자원을 취약지역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원격 수술에 대한 관심은 곧 수술로봇의 가치에 대한 담론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휴대전화,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땐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비싼 신기술’이라고 평가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도래한 것처럼, 자율성을 지닌 수술로봇과 이를 활용한 원격 수술이 일상이 될 어느 미래에는 수술로봇의 효과와 가치에 대한 고민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규제과학, 윤리, 그리고 산업화의 장벽

자율수술로봇과 AI 기반 의료 의사결정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규제적, 윤리적 과제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FDA는 AI 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다양한 인구 집단에 대한 테스트를 의무화해 투명성과 편향성을 관리하는 한편, 제품 전 수명주기(Total Product Life Cycle, TPLC) 접근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최신 AI 소프트웨어를 새로운 승인 없이도 임상 현장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간소화한 것입니다. 한편 책임 소재의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자율 수술 중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누구(인간 의사, 로봇 제조사, 또는 AI 알고리즘 개발자)에게 있는지에 대한 법적, 윤리적 프레임워크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의학, 공학, 법학, 윤리학 등 학제 간 협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많은 로봇 연구자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도 인허가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좌절합니다. 의료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의료기기 규제과학과 국제 표준에 대한 이해가 아주 중요합니다. ISO/IEC 국제표준 회의에서도 과거의 전기기계적 안전성보다는 ‘AI를 탑재해 자율성을 갖춘 의료 로봇’의 안전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잠재적 위험 요소를 예측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하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외줄 위의 걸음, 그 끝에 있는 것

저는 10년 전 기고한 글의 말미에 ‘다가올 새로운 반세기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를 경험할 것이 분명하므로 잘 대비하고 준비할 필요만 남아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반세기도 아니고 불과 10년 만에 이미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수술로봇 다빈치의 독점 시대가 끝나고 존슨 앤 존슨의 오타바(OTTAVA), 메드트로닉의 휴고(Hugo), 영국 CMR 서지컬의 버시우스(Versius) 등 다수의 경쟁 플랫폼이 등장하며 다각화 시대가 되었죠. AI 기반 자율수술로봇은 실험실에서 복잡한 수술을 수행하는 수준에 이르렀고요. AI 수술로봇이 언제쯤 출현할지 단언하기 어렵던 10년 전과 비교해 우리는 보다 분명한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의 문제이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날이 증가하는 의료 서비스의 수요와 심화되는 현장 인력 부족, 그리고 한정된 사회적 비용까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지능을 갖춘 수술로봇이 필요할 것입니다.

 

수술로봇 개발의 길은 마치 허공에 놓인 외줄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한 걸음 앞에는 성공의 환희가 있지만, 한 걸음 뒤는 곧 실패의 낭떠러지입니다. 수많은 기술, 규제, 시장의 난관을 극복해야 하기에 참 험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하지만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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