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락 교수는 당뇨 발, 외상이나 골절, 무지외반증 등 족부 파트를 전공으로 한다. 간혹 “다리에 벌레가 기어 다녀요”, “발에 물이
흐르는 것 같아요”라며 독특한 증상을 토로하는 신경병증성 통증 환자가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환자든 수술은 되도록 권하지 않는다.
그가 수술을 권한다는 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환자의 기대치를 채울 수 있는 수술일까?’ 늘 신중한 고민이 따른다.
“비수술적 치료로 해결될 문제인데 엉뚱한 수술을 받고 온 분들이 있어요.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고 제 의견을 물으러 오시기도
하고요. 환자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수술 후유증 등을 총체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최 교수는 수술 후 재활도 꼼꼼히 챙긴다.
“막연한 두려움에 안 아플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환자의 한계까지 밀어붙입니다. 걸어야 안 아파지는
거거든요.”
간혹 주도적인 결정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진료 방식으로 인해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받거나 ‘젊은 놈이 무례하다’라는 욕을 듣기도 한다.
“저는 공부하고 경험하며 쌓은 기준과 확신대로 진료합니다. 확신 없이 치료하는 건 오히려 환자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된 이유 대신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책을 소개했다. 「닥터 노먼 베쑨」,
「슈바이처 전기」, 「닥터 노구찌」, 「성채」와 「닥터스」까지. 모두 의사가 주인공이다.
“사실 제가 인생을 책으로 배웠습니다(웃음). 사람을 살리는 여부보다 맡은 일을
성실히 대하는 태도가 먼저 보였어요. 양심적 책임감을 지닌 의사를 꿈꾸게 됐죠.
의사가 되고 보니 항상성을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월드컵 분위기로 뜨겁던 2002년 8월. 정형외과에서 인턴 수련 중이었다. 휴가를
떠난 전공의 선배들의 일을 일부 맡았다. 그때 몇몇 선생님이 정형외과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혼나거나 급박한 상황에서도 풀 죽지 않는 강단을 본 것이다.
“그래도 정형외과의 첫 1년은 정말 힘들더라고요. 외상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시작부터 혹독한 예방접종을 한 덕분에 어제보단
오늘, 오늘보단 내일이 수월했어요. 정형외과는 환자의 회복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기쁨도 크고요. 지금은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발가락 끝으로만 걷는 첨족 보행 환자를 만났을 때다. 생사의 기로에서 다리 근육이 괴사한 케이스였다. 다리에 피부 이식을 받았으나
보행 기능은 사라진 상태였다. 까치발로 걷는 걸음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아킬레스건 연장술을 하고 뼈, 근육, 힘줄을 모두 손대야
했다. 낙심한 환자에게 “완벽할 순 없어도 편안히 걷게 해드릴게요”라고 약속했다. 오랜 치료 후 드디어 두 발바닥을 땅에 딛고 걸었을
때 “제가 이렇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환자는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 후엔 딸의 결혼식에 함께
입장한 후일담도 들려주었다. 최 교수에게는 의학 소설의 어느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족부 절단 수술을 한 환자에게 갑작스레 응급 상황이 찾아왔다. 다양한 합병증이 있는 데다 이전에도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였다.
보호자는 존엄한 죽음을 원했던 환자의 바람을 털어놓았다. 심정적으로는 동감했지만 사전 절차가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제야 제가 환자의 발만 봐 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의사라면 환자의 상태와 환경, 앞날을 모두 봐야 하는 건데….”
그 후로 죽음에 관한 강의를 찾아 들으며 상황이 좋지 않은 환자들에게 먼저 묻기 시작했다. “만약에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를 준비하셨나요?”
최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와 로봇 의족을 개발하는 국책연구과제를 시작했다. 사람의 신경과 연결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의족을
만들 계획이다.
“의족을 착용하는 환자 대부분이 자신의 건강을 예민하게 돌볼 수 없는 환경에 있습니다. 그분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더욱 가볍고 낮은
가격의 결과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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