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간이식·간담도외과 송기원 교수의 메일함에 낯선 이름의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보낸 이는 프랑스에서 심장외과 의사로 일하는 오마르 씨였다.
내용에는 아버지의 생체간이식을 위해 무작정 한국에 왔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140kg에 달하는 환자의 체격을 충족할 간의 크기, 재발 위험이 높은 진행성 간암이라는 장애물까지.
서울아산병원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했다.
‘내가 만약 저 아들의 입장이라면···’ 송 교수는 주저 없이 답장을 써 내려갔다.
“아무 걱정 말고 병원으로 오십시오.”

내 가족을 위한 최고의 선택
오마르 씨의 아버지는 20여 년 전 C형 간염을 시작으로 간경화와 간부전을 거쳐, 진행성 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오마르 씨는 지난 2년간 전 세계 생체간이식 관련 논문과 병원 성과를 모조리 분석했다. 그리고 찾은 정답이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주변 의료진과 친지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당연한 것처럼 미국 유명 병원을 선택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가족을 위한 선택’이기에 오마르 씨는 망설임 없이 모든 데이터가 말해주는 최고 병원으로 향했다. 한국에 도착해 시차로 뒤척인 새벽녘, 간이식 분야의 저명한 송기원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보낸 지 단 2시간 만에 답장을 받았어요. 빨라도 3~4일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너무 놀랐죠.”
서울아산병원에 처음 온 날 그와 가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환자와 의료진으로 북적이는 병원임에도 촘촘한 시스템과 빠른 진행은 그저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환자를 우선했다. 단 48시간 안에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검사가 이뤄졌다. 프랑스 병원에선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버지라서 머뭇거린,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나는 평생 파이터로 살아왔어요.” 모하메드 씨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대형 정유회사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대표의 삶보다 아버지의 삶에 중심축을 두고 살아왔다. 늘 가족의 커다란 울타리가 되고자 했던 그는 삶의 모래시계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자녀들에게 투병의 고통을 내색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간암이 발견되고 뇌사자 이식 대기자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한 프랑스 의료진에 그가 느낀 실망과 좌절은 너무나 컸다. 이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건 모하메드 씨의 치열한 삶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두 아들 하침과 오마르가 자신들의 간을 나눠 아버지를 살리겠다고 나섰다. “그건 절대 안돼!” 자녀들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장성한 두 아들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오마르는 간 기증을 위해 근무 중인 병원에 이미 사직서를 냈다가 자초지종을 들은 병원에서 충분한 휴가를 보장한 터였다. “저희를 위해 평생 희생한 아버지께 뭔가 드릴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영광이라고요!” 그 순간 아버지는 깨달았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녀들의 진심에 귀 기울이는 것 역시 아버지의 역할이었다. 두 아들의 선택을 따르기로 한 모하메드 씨는 수술실로 향하는 순간까지 만나는 의료진마다 붙잡고 물었다. “정말 제 아이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맞습니까?”
3개의 수술실, 17시간의 사투
5월 22일 아침, 3개의 수술실에 동시에 불이 들어왔다. 두 아들의 간을 각각 절제해 아버지에게 이식하는 고난도 ‘2대 1 생체간이식’ 수술이었다. 기증자 간절제는 송기원, 정동환 교수가 각각 맡고, 수혜자 수술은 이승규, 문덕복 교수가 집도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를 포함해 각 수술실에는 10명에 달하는 의료진이 투입됐다. 1대 1 간이식보다 수술 시간이 길어 투여 인력도 훨씬 많았다.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 모였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넘어 한 가족의 운명이 걸린 무거운 책임감이 수술실을 감싸고 있었다. 먼저 수술을 마친 두 아들은 수술 전보다 수술 후 아버지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힘겹게 느껴졌다. 수술 시작 후 17시간이 지난 새벽 2시. “수술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긴긴 침묵을 깨는 문자가 도착했을 때, 두 아들은 비로소 얕게 쉬어 온 숨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도의 미소를 머금은 채로 깊은 잠에 들었다.
두 개의 새 생명
수술 당일, 모로코에서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출국 당시 만삭이었던 큰아들 하침 씨의 아내가 딸을 출산한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떠나는 남편을 적극 응원했었다. 출산의 순간을 함께할 수 없어 아쉽지만 당신의 친구이자 영웅인 아버지에게 평생의 고마움을 보답하고 오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온 가족의 염원은 할아버지와 손녀, 한국과 모로코를 이으며 큰 감격으로 다가왔다. 기증 수술을 마치고 서둘러 모로코로 돌아간 하침 씨는 작고 귀여운 아기를 품에 안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회복 중이던 모하메드 씨의 얼굴에는 소리 없는 눈물과 웃음이 뒤범벅됐다. 평생 지키고자 애썼던 가족이 이제는 그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다.
“당신을 만나 다시 태어났습니다”
순탄했던 수술과 달리 모하메드 씨의 회복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이지 교수가 매일 세심히 돌봤고 이승규 교수 역시 틈틈이 병실에 들러 상태를 살폈다. 어느 일요일 밤, 이승규 교수가 출력물을 가득 들고 병실을 찾아왔다. 오마르 씨가 던진 수술적 질문을 잊지 않고 관련 논문을 모두 찾아온 것이다. 그리곤 한 시간 넘게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내용을 설명했다. 오마르 씨가 프랑스로 돌아간 뒤에도 아버지의 상태와 치료 과정을 직접 문자로 보내며 소통을 이어갔다. 오마르 씨는 환자 가족이자 의사로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이곳 의료진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로서 매 순간 행동하고 있었어요. 제가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과 의료진이 환자를 지키려는 마음이 같다는 걸 알았기에 단 한 순간도 아버지의 회복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긍정적인 기대와 굳건한 신뢰에 의료진은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수치가 정상화된 결과를 확인한 순간, 병실에는 모두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승규 교수는 “내심 애를 태웠는데,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네요”라며 아이처럼 웃었다. 모하메드 씨 역시 이 교수의 두 손을 꼭 쥔 채 고백했다. “내 평생 당신과 같은 의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을 만났기에 오늘 다시 태어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만 km 떨어진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시작된 기도는 서울아산병원의 한 병실에서 삶의 희망으로 결실을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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