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며 치료를 거부하던 20대 초반의 환자가 있었다. 조울증 증상이 점점 악화되고 더 이상의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안정 병동에 입원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성우 교수는 약 복용을 거듭 설득했다. 이를 힘겹게 받아들인 환자는 5년 이상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도 성공해 안정적인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환자 스스로 병원을 찾는 것만으로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는 주성우 교수는 현재의 증상을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치료 목표를 두고 있다.
환자의 삶을 오래 바라보며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의학을 배우고 제 관심사에 접목하면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소를 교정해 나가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첫발을 들이게 됐죠.” 수련 과정에서 성격장애나 불안장애부터 중증 정신질환까지 폭넓은 환자를 만났다. 그중에서 환청이나 망상 등의 치료는 다소 어렵고 위험한 면이 많지만, 치료를 통해 원만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환자들에게서 임상적인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조현병이나 조울증,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중증 우울증 환자를 주로 치료하고 있다.
이러한 질병은 대부분 20대 초반에 발병한다.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될 수 있지만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저는 보통 ‘모래시계’에 비유하는데요. 태어날 때 모래시계가 뒤집혔다가 모래가 다 떨어지면 유전적인 원인이 발현되는 거죠. 사회적 교육이나 기술, 인간관계가 채 형성되지 못한 시기에 질병이 발현되면 치료 후 회복할 기능 자체가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환자 입장에선 일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절망적으로 여기고 치료를 중도 포기하곤 한다. 버틸 만하다며 약을 끊으면 1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은 70~80%에 달한다. 질환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다양한 기능 장애를 경험하거나 재발할 때마다 복용하는 약의 가짓수가 늘어날 수 있다. 이들을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관찰하는 것이 주 교수에게 중요한 과제다.
단순한 약 처방을 넘어 ‘도와주겠다’라는 의지를 전달할 때 환자들은 큰 위안을 얻는다. 펠로우 시절부터 만난 환자들과 7~8년의 인연을 이어오는 이유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사회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에 진료의 가치가 담긴다.
희망을 남기는 적극적인 치료
주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되지 않은 난치성 환자에게 이곳이 마지막 병원이라는 데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최대한의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 약물 처방이나 전기경련치료(ECT) 등을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전기경련치료는 뇌에 전기 자극을 줘 경련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난치성 환자에게 적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때로는 의료진조차 예상하지 못한 호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환자의 감정은 부정적으로 오염되기 쉽습니다. 저라도 환자에게 남아 있는 선택지를 끝까지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권해야죠. 환자분들은 꼭 완치되지 않더라도 치료 가능성을 찾아준 것 자체로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하세요. 정 안 되면 이렇게라도 해볼 수 있다, 이 의사를 찾아가면 된다는 생각의 차이가 큰 힘이 되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것이 무조건 환자의 뜻에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조건적인 강제 입원을 요구하는 보호자에게 장기적 관점의 치료 계획을 설명하고, 진단에 불만을 품고 의무기록 삭제를 요구하는 환자에게는 임상적 관찰 결과에 따른 것임을 이해시킨다. 때로는 치료에 필요한 명확한 선을 판단하고 지키는 것이 환자를 진정으로 돕는 길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치료를 넘어 사회적 시스템으로
환자나 보호자의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연구로 이어진다. 그는 현재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원인과 유전적 소인을 밝히는 바이오마커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혈액 검사, 유전자 연구, 뇌 MRI 등을 활용해 환자 개인별 맞춤 치료 기준을 세우고 장기 경과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의사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특히 중증 정신질환은 환자 스스로 치료를 결정하거나 지속하기 어려워 보호자의 부담이 극에 달하고 가족 간의 갈등으로 심화될 수 있다. 퇴원 이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치료가 중단되고, 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채 재입원하는 악순환도 빈번하다. 주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개개인의 판단과 책임에 맡기기보다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 사례처럼 법원이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입원제’나 퇴원 후 사회 복귀를 돕는 ‘통합 관리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제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가 되어서 치료뿐 아니라 지역사회 중심의 재활과 국가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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