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사람이 좋아서 할 수 있었던 일들 2022.07.12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선우성 교수

 

▲ 2004년 해외 의료봉사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 2012년 암예방클리닉 개소기념식에서 기념 촬영. 원 안이 선우성 교수.2004년 해외 의료봉사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선우성 교수는 코로나19 전까지 매년 3번의 짐을 꾸렸다. 해외 오지의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사람에 대한 열정은 진료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서울아산병원 평생건강관리클리닉에서 만성질환 환자들의 건강과 삶을 나누며 주치의 역할을 담당해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로나19로 해외 의료 봉사가 오랫동안 중단되었죠?

멈춘 기간이 길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가을쯤에는 재개하고 싶습니다. 해외 의료봉사는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장성수 교수의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의료봉사팀을 꾸려 2004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라오스와 인도네시아, 네팔, 그리스로 매년 떠났습니다. 서울아산병원 메디컬콘텐츠센터 김한수 대리가 실질적인 살림을 맡아주었고 병원 직원들은 휴가와 사비를 들여 동참했어요. 직원들에게 전적인 부담을 지우는 게 마음에 걸려 당시 서울아산병원 김병식 교육부원장님에게 지원 요청을 했죠. 아산재단의 설립 이념이 있으니 든든하더라고요(웃음). 편도 항공료와 약제비를 지원받기 시작했습니다.

갈 때마다 작은 도움도 고마워하는 환자들을 통해 보람을 느낍니다. 의료진으로서 초심도 되찾고요. 봉사 일정이 짧으면 400여 명, 길면 1,300여 명을 진료합니다. 14년간 의사가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오지에도 가봤죠. 해외에 가서 봉사하는 데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나라의 의료 체계가 잡히길 기다릴 수만은 없어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해외환자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까요?

등에 20cm가 넘는 지방종을 가진 환자는 우리를 만나기 전까지 똑바로 누워 자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팔을 절단할 위기였던 만성골수염 환자는 초청 치료를 받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아들을 안은 사진과 운전하는 사진을 보내왔어요. 평범한 일상 사진 같지만 아들을 안아보는 것과 운전이 평생 소원이었던 환자의 벅찬 기쁨을 우리는 알죠.

서울아산병원 안과 차흥원 교수님이 수술한 백내장 환자의 붕대를 제가 대신 푼 적이 있습니다. 환자가 무척 고마워하는 거예요. 이제껏 앞이 안 보여서 저를 차 교수님으로 오해한 거죠. 굳이 오해를 풀지는 않았습니다(웃음).

 

울산의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셨죠?

학생들과 어울리는 게 참 재미있어요. 모임이 있으면 항상 끝까지 남았죠. 그걸 본 당시 김원동 학장님이 기숙사 사감을 맡기셨어요. 기숙사 방 배치 등의 문제를 자주 상의하던 기숙사자치위원장 학생이 지금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예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은재 교수는 당시 지도 학생의 남자친구로 만났고요. 요즘은 울산의대 출신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영화 동아리도 맡았는데 이름이 ‘헐침’이에요. 헐리우드 침공. 이름부터 매우 당차죠. 매년 출품하는 단편 영화에 고정 카메오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저는 환자 인터뷰에 쓰려고 산 마이크를 제공했고요. 학년 담임을 맡았던 11학번과는 매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습니다.

 

▲ 2013년 스승의 날에 제자들과 찍은 기념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선우성 교수.
▲ 2016년 브라질 리오에서 학회 발표자들과 함께. 오른쪽 첫 번째가 선우성 교수.

 

서울아산병원 평생건강관리클리닉을 열고 주치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주력하셨죠?

1995년 6월 2일에 클리닉을 개소했어요. 그달에 삼풍백화점 사고가 나서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죠. 제가 차출되어 현장 봉사자들의 건강을 살폈거든요. 평생건강관리클리닉은 가정의학과 본연의 취지를 살린 주치의 모델입니다. 처음엔 검진 위주로 꾸렸다가 방향을 바꿔 만성질환을 다루면서 주기적인 관리 영역과 주치의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었죠. 30여 년이 지나니까 수명을 다한 분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긴 인연 만큼 가슴이 아파요. 젊은 날에는 여기까지 생각을 못 했어요.

그래도 일차진료에 의사 생활의 전부를 바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암을 조기 발견하거나 환자가 금연에 성공하면 뿌듯하거든요. 암 치료 후 사후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2011년 암예방 클리닉도 만들었죠.

 

주치의로서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교수님만의 비법이 있나요?

제가 아픈 곳이 좀 많아요. 암 수술 경험담과 함께 약 부작용으로 생긴 몸의 변화를 보여주곤 합니다. 혈압약을 먹기 싫어하는 환자들에겐 “저도 마흔 살부터 20년째 먹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설득이 쉬워져요. 오히려 환자들이 제게 당부합니다. “저 계속 봐주시려면 건강하셔야 합니다!”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우울증 환자를 찾아내고, 많은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힘들던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시간을 들여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때문일 겁니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에게는 늘 미안하죠. 그래도 환자가 여기 오길 잘했다고 여기면 저도 가정의학과 의사를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사람을 좋아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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