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왜 가는가?” 2022.10.07

가정의학과 선우성 교수 편

 

 

효율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비교하며 비교당하며 자신감과 자괴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는 자신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반면에 봉사는 자발적으로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 그들의 삶에 다가가는 행위이다. ‘왜 가는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번 대담은 ‘봉사하는 의사’ 선우성 교수님과 진행했다.  (대담 진행 :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

 

교수님께서는 병원 홈페이지의 의료진 프로필에도 해외 의료봉사지에서의 사진을 올리셨습니다. 봉사하는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계신 듯합니다. 봉사의 시작은 어떠셨나요?

의대에 입학했을 때 봉사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학생 때 봉사 동아리를 했고요. 하지만 막상 의사가 되고 병원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여건이 되지 않아 잊고 지냈어요. 부교수가 되면서 병원 내 기독봉사회를 통해 봉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2002년에는 노숙자, 서울역 뒤 쪽방촌 등을 다니다 2004년부터 동남아를 중심으로 해외 의료봉사를 나갔습니다. 필리핀 어느 오지 마을이었는데 그 이장님이 이곳에 의사가 오는 것이 13년 만이라고 하더라고요. 물이 더러우니 수인성 전염병이 많았는데 정맥주사로 간단히 수액 공급만 해도 죽어가던 아이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며 봉사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보람을 느끼며 자원해서 해외 의료봉사를 자주 가게 됐어요. 자주 가니 또 보람을 느끼고….  일종의 선순환이었어요. 선교사님들과 연결돼 라오스, 인도네시아, 병원 교수님의 사모님이 계시는 네팔, 베트남도 가고 그리스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보트피플들도 봤습니다. 초기에는 1년에 한 번 꼴로 갔는데 그쪽 선교사님들의 요청이 많아 1년에 두 번, 세 번, 많게는 네 번도 갔어요. 처음에는 의료봉사 환경도 열악했는데 10년 이상 꾸준히 병원의 도움도 받고 경험도 쌓아가면서 이제는 봉사지에서 간이 수술장을 설치할 수준이 되는 등 시스템이 많이 안정됐어요. 저 스스로 즐겁고 보람을 느끼니 생활의 일부가 되었어요. 의사라면 진료, 교육,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듯 봉사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의료봉사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습니다. ‘그 지역의 실제 의료 수준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회성 봉사 아닌가? 차라리 국내의 어려운 사람에게 성금을 내라’ 등….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봉사에 대한 많은 비판들에 대해 제가 찾은 제 나름대로의 답은, 우선 봉사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특히 만약 아이들과 같이 간다면 산 교육의 장이 됩니다. 속 썩이던 자녀가 의료봉사 후에 태도가 바뀌는 경험은 자주 있습니다. 물론 오래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주기적으로 부스터 샷이 필요하기는 하지만요(웃음). 봉사지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요(의사, 간호사, 직원 등 여태껏 다섯 커플이 탄생했다고 한다). 우리가 먼저 사랑받은 사람들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 삶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기도 합니다. 수십 년 전 우리나라, 우리 조부모 세대에 외국 의료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생을 연장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제는 우리가 봉사를 해야 할 순서가 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또한 봉사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했잖아요. 무엇보다 아산재단의 설립 이념도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우리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 직원이라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 나라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봉사는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아무도 자신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주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만나기 전에 자살을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봉사 때 통역을 하던 원주민 여학생이 의사가 되어 아이들의 꿈이 되기도 합니다. 한 명에게 수액 공급을 하는 것만으로도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곳이 의료봉사 현장이고 현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병이 있다면 우리 병원에 데려와서 치료하기도 합니다. 균을 전파하는 결핵 환자를 찾아내어 치료한다면 보건학적 의미도 있는 일이고요. 얼굴의 혹을 제거하고 손을 자르려 했던 환자의 손을 보존해주고 전복된 관광버스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응급 수술도 하는 등 한 번의 치료로도 건강을 되찾고 삶의 질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많은 사례들을 보다 보면 봉사의 의미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 부분은 제679호 병원보 <병원과 나> 코너에 담긴 선우성 교수님 인터뷰와 겹치는 부분이어서 간략히 언급한다. 궁금하신 분은 해당 코너를 같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제가 가졌던 의료봉사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들도 대답을 듣는 중에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의료봉사지에서의 내 작은 노력이 상대방에게 큰 회복과 위로를 준다는 것이 중독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으로 봉사자로서의 덕목이란 무엇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인류애라 할까요, 환자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성실성과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또한 봉사를 계획하는 리더라면 기획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그 지역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죠. 네팔에는 호흡기 질환, 라오스 등에는 결석, 인도네시아에는 심한 고혈압 환자들이 많아요. 이렇게 지역마다 질병의 특색이 다릅니다. 또한 봉사를 가면 힘들기 때문에 팀원 간 불협화음이 날 수 있어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봉사를 꼭 해야 한다거나 봉사만이 능사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학자로서 환자 진료, 학생 교육 모두 큰 의미가 있죠. 다만 무엇을 하든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왜 의료인의 삶을 사는지 잊지 말고 그 길에서 노력하면 그것이 다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 선우성 교수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했으며 1995년 우리 병원 가정의학과에 합류했다. 병원뿐만 아니라 학회, 국가 의료정책, 건강검진 분야에 매진해왔으며 특히 해외 의료봉사를 오랜 시간 꾸준히 진행해왔다. 현재까지 40회가량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왔으며 우리 병원 해외 의료봉사팀을 이끌고 있다.

 

 

<의사가 만난 의사> 시리즈를 마치며

지난 5개월에 걸쳐 우리 병원을 있게 한 선배 의사 다섯 분(고윤석, 이승규, 박승정, 박성욱, 선우성 교수)과 진행했던 대담을 정리했다. 1시간 남짓의 대담 내용을 지면에 다 옮길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중요한 내용을 더 담아내려는 욕심에 병원보 편집실을 괴롭혔기에 이제 늦게나마 사과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분들과 대담을 진행하며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돌아가신 정주영 설립자에 대한 굉장한 향수였다. 다섯 분 모두 그분이 의료진을 존중하셨고 병원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셨음을 강조했으며 또한 그분이 재단과 병원을 세우며 제시하신 목적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둘째로 동료와 팀에 대한 애정이다. 자기 팀을 아끼고 챙기는 것에 맹목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결국 리더들은 자기 혼자 설 수 없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다섯 분의 선배 의사 중 대부분이 나이 마흔이 지나서야 자신의 방향을 확실히 정하고 몰입하여 매진하였다. 어렸을 적 한 번 정한 목표를 어떻게든 달성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어지는 조건들에 성실히 반응했더니 길이 열리는 것에 가까웠다.

 

그들의 업적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천재여서 이루어 낸 것일까? 남을 돕는다는 선한 목표를 향해 몰입하고 난관을 극복하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단단한 비전을 갖게 되고 그 비전으로 동료들을 설득해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의사로서 떠남을 준비하는 그분들의 이야기가 ‘지금 계단을 올라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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