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165일 만에 집으로 온 하봄이 2023.01.18

 

 

“폐가 23%밖에 안 됩니다. 최소 25% 이상은 되어야 기대도 해 볼 텐데···.” 23주 5일째 되던 날 동네 병원에선 임신 중단을 권했다. 태아의 왼쪽 횡격막 탈장이 이유였다. 하루만 고민해 보겠다며 병원을 나선 그날 오후 유독 태동이 활발했다. 아직 여기 살아 있다는 듯 아이는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신호를 보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는 사촌 동생에게 연락했다. 대구에선 꽤 멀지만 치료를 잘하는 병원이라고 누누이 들어왔다. 그곳에선 아이와 만나게 해줄지도 몰랐다.

 

단 1분을 살아도 괜찮아요   

27주 차에 산부인과 이미영 교수를 만났다. “상황이 많이 어렵네요.” 요행을 바란 건 아니지만 실망감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 살 수 있는 아이인데 어렵게 생명을 놓기도 하고 누가 봐도 못 살 것 같던 아이가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대 없이 듣다가 멈칫했다. ‘그래도 가보자’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교수는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 시술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가까운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양수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동네 병원에 갈 때마다 ‘이 아이는 한 시간이라도 살면 잘 사는 거예요’ ‘엄마 몸에도 안 좋을 텐데…’라고 했다. 의사가 아무리 조심스레 말해도 듣는 마음에 상처가 남았다. 집에 돌아와 한참 울다 보면 태동이 없어졌다. 엄마의 감정을 아이도 느낀다고 생각하니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다음 검사 때 이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아이와 단 1분을 만나더라도 저는 끝까지 가볼 테니까 도와주세요.”

 

만남과 헤어짐   

예정일은 2021년 1월 8일이었다. 기도 삽관 등 응급 상황에 따른 모든 대처를 서울아산병원 분만팀에서 계획했다. 그런데 열흘 앞서 양수가 터졌다. 신생아중환자실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아이의 안정된 치료를 위해 최대한 버티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12월 30일 새벽 1시 20분. 당직 중이던 의료진이 급히 분만을 진행했다. 제힘으로 숨 쉬지 못하는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이 모습을 본 남편은 하얗게 질린 채 다가왔다. “이제부터 너만 생각하자, 너만!” 아이가 살지 못할 거라고 예감한 듯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른 새벽 신생아과 정의석 교수가 찾아왔다. 아이에게 체외산소막 치료(ECMO)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해주세요. 교수님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주세요.”

의료진은 아이를 만나기 전에 미리 귀띔했다. “아기가 가만히 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아이 몸에 온갖 의료 장치가 달린 것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그 후로도 아이의 컨디션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횡격막 교정술은 4번이나 미뤄졌다. 3010으로 시작하는 병원 전화만 오면 큰일이 생겼을까 봐 심장이 조여왔다. 생후 21일째, 수술실로 가는 아이를 잠깐 본 것이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하봄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병원에서 보낸 두 계절   

수술 뒤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폐가 워낙 작아서 심장에 주는 부담이 컸다. 하봄이의 오늘을 지켜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잠에서 깬 하봄이입니다’ ‘오늘 처음 미음을 먹었어요’라며 하봄이의 사진을 틈틈이 보내주었다. 곁에 없지만 사진만으로도 ‘오늘도 살아냈구나!’ 더없는 위로를 받았다. 하봄이를 품은 이후로 매 순간이 처음 겪는 경험과 감정의 연속이었다. 이제껏 내가 세운 계획과 예측 가능한 결과 속에서만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내일을 속단하지 않고 주어진 오늘을 충분히 살아내는 것. 그것만이 중요해졌다.

99일째 되던 날 주치의의 배려로 하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를 알아보나 봐요!” 간호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얼굴을 쳐다보는 하봄이를 대견해했다. “이제까지 제가 하봄이를 기다린다고 생각했는데 하봄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삭막한 병원에서 고통스러운 치료만 받게 하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해왔다. 그런데 하봄이는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처럼 잘 웃고 눈을 마주치며 교감했다. 간호사뿐 아니라 의사, 신생아중환자실 직원 모두 하봄이의 이유식을 챙기며 보듬었다고 한다. 그 정성과 사랑을 의심할 수 없었다. 하봄이는 두 계절을 보낸 뒤 의료진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165일 만에 집에 왔다. 

 

우리의 모든 날   

폐동맥 고혈압약과 콧줄, 산소 모니터 등 의료 장비와 의약품이 한가득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하봄이와 함께 있어 좋으면서도 혹시 모를 상황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아이가 잠들면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숨결을 느끼며 온전한 행복을 누렸다.

정기 진료차 병원에 왔다가 탈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척추가 자라면서 장이 눌린 것이다. 바로 횡격막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앱으로 확인한 하봄이의 혈액 수치가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듯했다. 마침 걸려 온 정의석 교수의 전화에 한참 울었다.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진작 저한테 연락하시지 그랬어요.” 차분한 위로에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정 교수는 하봄이를 내 품에 다시 안겨주었다.

하봄이의 성장 일기를 SNS에 종종 올린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보내준 하봄이의 사진이 내게 힘이 됐듯이, 의료진도 이 모습을 보며 보람과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성장 속도는 또래보다 조금 느리지만 씩씩하게 울고 웃고 뛰면서 하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아슬아슬한 하루가 쌓여 우리의 일상도 이제는 제법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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