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수능을 한 달 앞둔 고등학생이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았다. 빠른 골수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최윤숙 교수는 수능일과 면접일에 맞춰 촘촘히 치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교육청과 협의한 끝에 환자는 무균실에서 수능을 치를 수 있었고 면접일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환자는 대학 합격 소식을, 저는 완치 판정을 서로에게 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의지와 실력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요. 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만족스러운 과정은 만들 수 있죠.”
나를 키운 순간들
최윤숙 교수는 성장을 경험한 몇 번의 장면을 떠올렸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1달 넘게 지속된 고열로 크게 앓으면서 대학병원에 입원해 각종 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의 대화가 온통 외계어로 들렸다. 호기심 가득하던 입원 생활이 점점 길어지면서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걸 실감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명열은 3개월이 지나 사그라들었지만 의사의 꿈만은 선명하게 남았다.
전공의 때 21살의 백혈병 환자를 만났다. 여러 번의 항암 치료와 골수이식에도 회복은 요원했다. 늘 의연한 태도로 의료진에게 항상 감사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갖은 노력에도 환자는 사망했고 최 교수에게 유독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경험으로 남았다. 그와 같은 환자들을 고쳐주고 싶은 간절함은 전공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혈액내과는 다른 과에서 보기 힘든 20대 중증 환자가 많고 상당수가 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욕심나는 분야였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전문의를 마친 뒤 울산대병원의 골수이식 전담 교수로 근무했다. 주말도 없이 병원의 모든 골수이식 환자를 치료했다. 전적인 책임이 버거웠지만 이식할 때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임상 상황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었다. 단기간에 축적된 노하우와 전문성은 든든한 무기가 되었다. “웬만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그때 생긴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할 수 있고요.”
긴장과 성의
대부분의 혈액암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을 진단받는다. 암 중에서도 진행 속도가 가장 빨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수개월 내 사망에 이른다. 그만큼 항암 치료의 강도가 높고 합병증 우려가 크다. 감염에 취약해진 환자들은 순식간에 대처하기 힘든 응급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최 교수가 주말이나 휴일에도 전화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매 순간 어려운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저를 기다려요. 혈액암은 온몸으로 퍼지기 때문에 환자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내과적 지식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놓치는 부분이나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늘 긴장 상태죠. 복잡한 문제를 두고 치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 ‘환자 가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최선의 답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 교수는 환자와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응급 상황과 긴 병원 생활로 인한 환자들의 스트레스는 때로 거칠게 표출되곤 한다. “담당 교수로서 환자와 병동 의료진의 마음을 모두 살펴야 하는 책임감을 느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질병의 특수성을 미리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의료진이 평소에 성심성의껏 진료하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환자와 보호자는 치료 결과가 어떻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전공의에게도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환자들에게 끝까지 성의를 다하자고요.”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급성 백혈병 진단을 듣고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만났다. “그런 마음이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라며 공감하던 최 교수는 덧붙여 말했다. “일단 함께 노력해 보고 정 힘들다 싶으면 말씀해 주세요. 바로 중단하겠습니다.” 최 교수는 환자들의 불안과 우울감을 먼저 파악하고 이에 맞는 대응을 찾아나간다. “제가 치료하는 질병의 특성상 환자들이 오랜 기간 입원하고 진료받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관심과 애정이 담겨요. 상당수가 완치될 수 있다는 믿음은 저만의 원동력이 되고요. 무사히 치료받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간 환자들이 취직과 결혼, 출산 소식 등을 알려오면 저도 앞으로 나갈 힘을 새롭게 얻습니다.”
이전 병원에서 치료하던 백혈병 환자에게 메일이 도착했다. 심정지가 2번이나 올 만큼 위중한 환자였다. 끝까지 돌보지 못한 아쉬움을 환자도 알았는지 반가운 퇴원 소식을 전했다. “중환자실과 병실에서 최 교수님을 뵐 때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었거든요. 교수님을 만나는 순간이 한 줄기 빛처럼 느껴져 감사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교수님, 더 넓은 무대에서 더 많은 환우에게 따뜻한 명의가 되어 주세요. 저도 일상으로 돌아가 이 상황을 잘 이겨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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