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수련 당시 김정훈 교수가 지켜본 선배 신경외과 의사들은 병동, 수술실, 응급실을 누비며 환자를 살리고 밤낮으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 히어로였다. 마치 칼끝에 선 것 같은 긴장 속에서도 환자를 살린다는 보람으로 정진하던
선배 의사들을 보며 신경외과 의사는 외과 의사들 중의 외과 의사, 딱 그 자체라는 생각에 이 길을 선택했다.
“악성일 확률이 10%고 양성일 확률이 90%라면 양성일 확률을 주로 말씀드립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오신 분들이잖아요.
제 말 한마디에 버틸 힘을 얻으실 수도 있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실 수도 있으니까 의학적 소견에 따른 객관성을 유지하되 가능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한 달 동안 무려 약 50여 건의 뇌종양 수술을 소화해 내는 김정훈 교수. 김 교수가 환자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신뢰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환자에게 개인 연락처를 알려드리고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언제든 연락을 직접 하기를 부탁한다고.
환자와 오해를 줄이고 활발히 소통하고자 하는 김정훈 교수의 노력과 고민이 엿보였다.
8년 전 한 악성 뇌종양 환자가 김정훈 교수를 찾아왔다. 19세 남자 환자로
수능을 한 달여 앞둔 상태에서 들려온 비보였다. 더는 수술을 미룰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 수능 시험 이틀 전 수술을 했는데 깨어난 환자가
수능 시험을 꼭 보러 가고 싶다며 김 교수의 허락을 구한 것이었다.
“과연 수능 시험을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다 그 환자와 동갑인 제 아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제 아들이 하는 말이 그 환자가 그렇게
원하는데 수능을 치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어떠냐는 거였어요.
그래서 수능 날 간호사와 함께 구급차를 태워서 수능 시험장으로 보냈죠.”
하지만 환자는 장시간 개두술을 치른 직후라 도중에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4~5년을 더 투병하다 안타깝게 암 재발로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았던 환자였고, 동년배의 아들이
있었던지라 더욱 마음 저리게 김 교수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환자들에게 더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지만,
마지막 희망을 품고 이곳까지 찾아온 환자들이기에 김정훈 교수는 혼신을
다해 치료에 임한다.
지금은 명의 반열에 들어선 김정훈 교수지만 아직도 첫 수술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두 손이 환자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더욱 긴장했던 그때. 감히 인간으로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기에 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며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뇌종양 중 난치병, 불치병으로 일컬어지는 교모세포종이 있습니다. 지난 30~40년 동안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치료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의료기관, 다국적 기업과 임상 연구에 더 많이 동참해서 효과적인 항암제와 치료 요법을 찾아내
치료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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