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PACS가 새로 설치된 흉부영상판독실에서 기념촬영.
▲ 2007년 아산생명과학연구소에서 동물 실험을 함께하는 연구원들과 기념촬영. 왼쪽 첫 번째가 이진성 교수.
매일 같은 일터에도 많은 변화와 성취가 기다린다. 1994년 서울아산병원 펠로우로 입사한 이진성 교수는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흉부 파트에서 소아 영상 파트로 세부 전공을 바꾸고, AI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매년 오케스트라 활동과 틈틈이 의료 봉사를 펼치는 등 30여 년 병원 생활의 즐거움을 들어 보았다.
입사하고 영상의학과의 변화를 실감하신 적이 있나요?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의료영상정보전송시스템(PACS)의 도입이죠. 그전에는 병실, 외래, 판독실, 교수 연구실 등에 흩어져 있는 의료 영상 필름 봉투를 찾는 게 일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죠. 2000년 PACS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영상 필름을 디지털로 전환해 언제 어디서나 전송, 판독, 진단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처음엔 비용과 위험 부담을 이유로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개발 후에는 안정적으로 잘 유지해 온 것 같아요.
원래 흉부 영상 파트에 있다가 소아 영상 파트로 옮기신 거죠?
2011년에 영상의학과장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소아 영상은 20년 동안 해본 적 없는 분야여서 도전이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50대에 들어섰을 때예요.(웃음) 진행하던 연구도 정리하고 소아 영상에 집중했습니다. 적응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아이들은 제게 화성인 같은 존재였거든요. 질병도, 생김새도, 진행도 모두 다르죠. 특히 서울아산병원에는 생소한 염색체 질환을 가진 환아도 많고요. 일일이 뜯어보다 보면 무척 흥미로운데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도 제가 판독한 내용이 치료에 도움이 됐을 때가 가장 기분 좋아요.
판독에는 눈썰미도 필요하지만 훈련이 중요합니다. 영상의학과 후배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건 죄를 짓는 거라고 자주 이야기해 왔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판독할 수 있는 내용을 제가 부족해서 해내지 못한다면 죄나 다름없죠. 치료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요. 환자와 대면하지 않더라도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인 것 같아요.
골 연령 측정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엑스레이를 보고 뼈 나이를 예상하려면 100페이지쯤 되는 책을 일일이 뒤적여야 했습니다. 비슷한 사진을 찾아서 나이를 판명하는 방식인 거죠. 주로 전공의가 하는 일인데 1시간 동안 10~20건 정도 판독할 수 있었습니다. 별다른 성과나 성취감 없이 판독할 것이 계속 쌓이는 거죠. 그래서 융합의학과 심우현 부교수가 책에 있는 사진을 모두 스캔해서 스크롤을 내리며 비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단축됐어요. 그러다 AI를 사용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관련 기술을 가진 회사와 시장 조사부터 들어갔죠. 우리의 판독 사진과 결과를 딥러닝 시켜 키만 누르면 골 연령이 산출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증받은 첫 번째 AI 프로그램입니다. 기술 이전으로 매출의 일부분이 병원에 들어오고 있어요. 병원에 뭔가 기여할 수 있어 뿌듯합니다.
▲ 2015년 내 고향 순회진료에서 참여 의료진과 마을 주민 대표들의 기념촬영. 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이진성 교수.
▲ 소아판독실에서 생일을 축하받는 모습. 왼쪽 두 번째가 이진성 교수.
반복된 일상에서 교수님만의 탈출구는 무엇이었나요?
2000년부터 병원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를 불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초대하고 기부금을 전달하는 의미도 있지만 음악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큽니다. 2014년 협주곡 협연자로 나설 때는 매일 맹연습했어요. 공연을 마치면 책을 탈고한 듯한 성취감이 기다립니다.
지방 순회 진료나 해외 봉사 진료도 종종 다녀왔습니다. 보통 하루에 100여 명의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꽤 힘들어요. 배가 아프다던 14살 소녀가 임신 상태인 걸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봉사 나갈 때마다 애잔함이 느껴져요. 제 어린 시절 풍경같고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으면 합니다. 저마다 다른 감정이 들 거예요.
미래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소회가 있으세요?
“언젠가 이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지 않을까요?” 전공의들이 궁금해 해요. 저도 머리를 긁적이며 답합니다.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영상의 노이즈를 제거해 줄 순 있어도 빠르고 정확한 진단 기술이 금방 나오기 힘들 것 같거든요. 제가 인턴 때 하던 일을 지금은 컴퓨터가 전부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턴 업무가 줄어든 건 아니죠. 일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요. 저는 지난 30년 간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해봤고요. 여러분도 하고 싶은 일에 달려들어 보세요. 병원과 동료 모두가 도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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