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미국 연수 기간 심태선 교수가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 2005년 비결핵항산균 약제감수성 검사를 국내에 도입하고자 미국 국립쥬이시병원을 방문했다. 뒷줄 가운데가 심태선 교수.
심태선 교수는 결핵 분야에 집중해 새로운 검사법과 신약을 도입하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했다. 우리 병원의 첫 폐 이식 수술에 호흡기내과 담당으로도 참여했다. 심 교수는 27년간의 병원 생활이 만족스러울 수 있었던 요인을 일에 대한 주인의식에서 찾았다. 그리고 ‘나의 일을 나답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병원에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일찍이 결핵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히셨죠?
1996년 호흡기내과에 임상강사로 입사했을 때 제가 모교 병원에서 해오던 결핵 관련 실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어요. 덕분에 결핵 분야에서 일찍이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아이디어나 연구 기반이 부족해 고생했지만 내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연구 분야를 넓혀가며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더라고요. 매일 밤 9시가 넘어서 진료와 의국 업무가 끝나고 주말에도 진료와 회진을 마친 오후부터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좀처럼 여유가 없던 시절이지만 해가 긴 계절의 주말 저녁이면 병원 테니스장에 모여 교수님, 전공의들과 맥주 내기 테니스를 치던 추억도 남았습니다.
새로운 치료법을 도입한 경험이 있으세요?
10년간 균이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는 15세 다제내성폐결핵 환자가 있었어요. 폐는 계속 손상되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아버지도 결핵으로 사망했고 환자의 언니도 같은 질병을 앓았습니다. 기존의 약제로는 치료가 불가능했죠. ‘리네졸리드’라는 항생제가 결핵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외국의 케이스를 근거로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수개월 후 균은 음성으로 나타났어요. 이후의 진료 경험을 모아 해외 논문에 발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다제내성결핵의 필수 치료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8년 우리 병원에서 처음 폐 이식을 시도할 때 참여하셨죠?
다학제팀 참여 진료과 중에서 호흡기내과 담당을 맡았습니다. 이식할 준비를 갖췄지만 첫 환자에게 설명할 우리 병원의 폐 이식 성적이 없는 게 참 난감하더라고요. 폐섬유화증을 앓던 50대 환자분이었는데 다행히 의료진을 믿고 따라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분이죠. 폐 이식은 사실 제가 임상강사일 때부터 흉부외과 주도로 준비해왔습니다. 내부적으로 조율할 것이 워낙 많은데다 추진하던 교수님께서 은퇴하면서 지연된 거죠. 그 사이에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첫 폐 이식을 시도했습니다. 2008년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폐 이식 성적이 7건이었는데 저에겐 먼 산처럼 보였어요.(웃음) 늦은 시작이었지만 좋은 치료 결과를 내면서 타 병원에 우리도 건강한 자극을 줬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 병원에서 폐 이식을 받은 환자분들이 여전히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계셔서 개인적인 보람도 큽니다.
▲ 2008년 첫 폐 이식을 앞두고 일본 오카야마대학병원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첫 번째가 심태선 교수.
▲ 2015년 호흡기내과 야유회에서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교육수련실장 시절에 인턴 파업에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2013년 1월부터 교육수련실장을 맡았습니다. 연초 1주일간 휴가를 보내고 8일에 출근했더니 인턴 파업이 기다렸습니다. 인턴과 모여서 난상토론을 펼쳤죠. 행정 경험은 부족하지만 선배 의사로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누적된 문제들의 개선을 약속하면서 파업은 하루 만에 끝났어요. 병원도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가지고 채혈 업무를 맡을 주사팀을 구성하고 35명의 간호사를 채용했습니다. 휴가를 보장하고 로테이션 스케줄을 조정하자 인턴들의 만족도가 높아졌습니다. 우수 전공의 모집에도 도움이 된 것 같고요. 치열한 논의를 거쳐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과정에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선책을 내려면 현장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제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퇴사를 고민하는 전공의와 상담도 하고요. 그때 제 이야기를 후배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사뭇 궁금하네요.
앞으로의 병원 생활에 지키고 싶은 철칙이 있으세요?
마지막 날까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에요. 선배 교수님들이 제 영역을 인정해 주고 사소한 일도 미루지 않은 모습에서 배운 거죠.
솔직히 서울아산병원은 제게 집보다 편한 곳입니다. 그만큼 가족에게 소홀했다는 의미가 될 텐데, 양가 부모님이 병원 진료를 받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못다 한 효도를 하는 기분입니다. 진료에 매우 만족하시는 걸 볼 때마다 여러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고요. 이런 과정이 병원에 대한 자부심이자 직원 간의 단합 요소가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직원분들과 그 가족을 VIP환자로 생각하며 진료하고 있습니다. 행복했던 병원 생활에 대한 제 나름의 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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