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다시 뛰는 심장으로 - 확장성심근병증 완치, 임해철편 2015.05.08

2011년 8월 5일 서울아산병원 수술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있는 임해철씨의 기도에 관을 삽입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제가 성악가입니다. 성대를 조금만 다쳐도 다시 무대에 설 수 없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듯이 몸속으로 마취제가 퍼졌고, 13시간 후에나 끝날 대수술이 시작됐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 500례 기념행사 재능기부 로비음악회, 2014년 12월 18일

대한민국 최초 심장이식 500례를 기념하는
특별음악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324번째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서 벌써 3년 4개월이 됐습니다.

이렇게 다시 노래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히 감격스럽고

다시 뛰는 심장으로 성인심장이식 임해철 편


나는 성악가입니다

성악을 시작한 이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로마 산타체실리아 음악원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 무대에도 데뷔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국립오페라단, 서울시립오페라단뿐만 아니라
호남신학대학 교수로서 교단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절망

2009년 4월로 기억합니다. 숨쉬기가 어렵고
특히 누운 자세가 되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병원에 찾아갔더니 이미 저의 심장 상태가
생명을 유지하기에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희망 '심장이식'

심장이식을 받겠다고 결정은 했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오늘일까 아니면 내일일까

기다리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의료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질환에 대한 설명, 저에 대한 배려

특별히 이미 심장이식을 받은 분들이 제 병상까지
찾아와서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줄 때 너무나도 큰 힘이 됐습니다.


희망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

마지막 수술실 들어갈 때는 두려움보다는
기쁨이라고 할까요. 묘한 감정에 뒤엉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저의 2번째 삶이 시작됐습니다.


다시 뛰는 심장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다시 무대를 선다고 하는 것은 수술받은
저에겐 꿈이었습니다.

100일째 됐을 때 첫 무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울고 관객도 울고 …


함께 모여 만들어낸 아름다운 화음

그동안 찾지 않았던 교도소나 불우시설, 그리고
서울아산병원 로비에서도 두 차례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나누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격려를 받은 분들이 또 다시
다른 분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는 삶이 너무 감사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희망의 삶

희망이란 같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가족과 의료진이
함께 해 주셔서 이렇게 새 삶을 얻었습니다.

작은 관심이 제게는 너무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따뜻한 정을 나누며
더불어 사는 희망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희망으로 울려퍼지는 하모니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

real story 희망을 나눕니다.

나는 성악가입니다

 

2011년 8월 5일 서울아산병원 수술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있는 임해철씨의 기도에 관을 삽입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제가 성악가입니다. 성대를 조금만 다쳐도 다시 무대에 설 수 없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듯이 몸속으로 마취제가 퍼졌고, 13시간 후에나 끝날 대수술이 시작됐습니다.

 

“119, 119” 갑작스러운 심장정지

 

2010년, 광주 호남신학대 회의실.
동료 교수들과 회의를 하는 날, 그날도 임해철씨는 몇 달 동안 힘든 일을 마치고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맥박이 요동쳤습니다. 그는 다급하게 동료 교수의 무릎을 손으로 치며 119를 불러달라고 말했습니다. 심장발작이 일어난 것입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무려 여러 차례 제세동기로 전기충격을 받았지만, 부정맥은 계속됐습니다. 의료진은 가족들을 빨리 부르라고 통보했습니다. 헐레벌떡 응급실에 온 아내는 전기 충격을 가할 때마다 힘없이 튀어 오르는 남편을 보며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밤새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긴 밤이었습니다.

“사실 심장에 이상이 온 건 1년 전, 2009년 4월이었습니다. 심장근육이 손상되어 늘어나 심장의 수축력이 감소하는 확장성 심근병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점점 심장기능이 떨어지고 호흡곤란 증상이 악화됐습니다. 이런 몸으로 무리해서 일한 게 결국 화근이 된 것이지요.”
얼마 후 가슴 속에 제세동기를 심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세동기는 심장리듬이 고르지 못할 때면, 자동으로 전기신호를 보내 심장을 정상적으로 뛰게 합니다. 1개월 후 퇴원하는 날, 심장이식을 받아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 교단에 서기도, 일상생활을 하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 고향 대학병원 의사의 권유로 서울아산병원 김재중 심장내과 교수를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심장이식의 최전선, 서울아산병원

2010년 6월 ~ 2011년 7월, 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하는 삶이 이어졌습니다. 그사이 수술대기 연락을 3번이나 받았지만 모두 연기됐습니다. 한 번은 수술실 문 앞에서 공여자의 심장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수술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흔히 심장은 자동차 엔진에 비유합니다. 소형차 엔진이 대형차를 감당할 수 없듯이 왜소한 사람의 심장을 체격이 큰 몸에 이식할 수 없습니다. 언제 뇌사기증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마당에 덩치 큰 그의 몸에 맞는 심장을 찾는 일은 더 어려웠습니다.

“기약 없이 기다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조바심 나는 것은 물론이고, 성악가였기 때문에 수술과정에서 성대가 다치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뒤엉켜 복잡했습니다. 그때 주치의인 김재중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님이 큰 힘이 됐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돌봐야하는 상황에서도 일일이 제 궁금증을 풀어주고, 이식을 받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습니다.”

김재중 교수의 믿음은 단지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심장이식은 수술을 맡는 외과의뿐만 아니라 수술 전후 환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유기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드문 게 사실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은 대한민국 심장이식의 60~70%를 맡고 있습니다.

2011년 8월 4일, 수술 하루 전, 서울아산병원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 왔습니다. 저녁식사 시간, 의료진은 그에게 심장이식수술을 통보했습니다. 이식대기자로 등록한지 여섯 달만이었습니다. 그날 밤 바로 수술실에 들어갔고, 윤태진 서울아산병원 심장외과 교수팀의 집도로 무려 13시간 심장이식수술 끝에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병실로 돌아온 그는 목소리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그에게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은 6개월 정도 기다리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근육에 힘이 안 생겨서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서서히 목소리가 돌아왔고, 그를 붙잡고 있던 마지막 불안감마저 사그라졌습니다.

다시 무대에 서다

 

2011년 11월 20일 광주의 한 교회.
수술 100일 후 다시 선 무대. 한국인 최초로 로마 오페라무대에 데뷔해 화려한 길을 걸어온 그였지만 병마를 극복하고 다시 선 무대는 꿈만 같았습니다. 첫 곡은 글로리였습니다. 객석 바닥부터 층층이 채워지는 목소리가 무대 전체에 울려 퍼지자 노래를 부르지 못할까봐 걱정했던 그도, 관객도 모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로마 데뷔무대보다 강렬했습니다. 그의 무대는 더 이상 오페라가 아니었습니다. 병원, 교도소, 복지시설이 무대가 됐습니다. 이제 그는 다시 뛰는 심장으로 새로운 무대에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