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다시 쓰는 주영이네 이야기 2015.10.15

 

16개월 된 둘째 딸이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감기인 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선 폐렴이라고 했다.

아이를 입원시키고 어린이집에 간 큰 딸을 마중하러 나간 사이에 병원에 있던 둘째 딸이 호흡곤란으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큰딸을 데리고 병원을 가는데 아이가 몇 발짝 걷다가

“엄마… 힘들어,힘들어” 보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화도 내고 달래기도 했지만 몇 발짝 가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랴부랴 CT를 찍어봤다.

 

“아이의 폐가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습니다. 매우 심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2005년 26살 젊은 나이에 결혼한 백현정 씨. 남편 전효택 씨의 직업이 군인이다 보니 가정일은 대부분 현정 씨의 몫이었다. 평소 가구를 옮기거나 형광등을 가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해낼 만큼 건강하고 씩씩했다. 4살 주영이와 16개월 된 딸을 키우다 보니 난방에 특히 신경이 많이 쓰였다. 따뜻한 실내 공기는 쉽게 건조해져 가습기를 자주 틀었다. 청소 겸 가습기 살균제를 수시로 함께 사용했다. 2011년 3월 어느 날 갑자기 16개월 된 둘째 딸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다. 2주 후 아이를 간호하던 현정 씨가 기침과 구토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큰딸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생의 최전방에서     

최전방 근무로 주말에만 잠깐 얼굴을 보여주는 게 항상 미안했던 효택 씨. 겨울 훈련만 마치면 두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사경을 헤매는 아내와 두 딸이었다. 태어난 지 1달 만에 헤어져 아직 10번도 채 보지 못한 둘째 딸은 산소호흡기와 콧줄 없이는 숨을 쉬지 못했다. 아내와 큰딸마저도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세 사람의 폐는 빠르게 굳어 가고 있었다. 힘들게 버티던 둘째 딸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중환자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아내 현정 씨에게는 소식을 전하지도 못한 채 혼자 딸의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폐를 이식해야만 합니다.” 의료진과 상의 후 서울아산병원행을 결정했다. 다행히 현정 씨는 폐 이식 대기자로 등록한 지 일주일 만에 수술을 받고, 얼마 뒤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겨졌다.

 

최선을 다한다는 위로      

서울아산병원으로 와서야 그것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현정 씨가 건강을 회복해 가는 사이, 큰딸 주영이는 소아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몸이 작은 주영이에게는 작은 폐가 필요했다. 주영이의 몸에 맞는 폐 기증자를 기다리는 동안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는 심폐보조기 에크모(ECMO)를 달았다. 굵은 튜브가 주영이의 작은 심장과 허벅지 동맥을 관통했다. 폐 기증자가 나타나기 전까진 이 기계가 주영이의 생명줄이었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기계는 1, 2주 이상을 달지 못했다. 통상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2주가 지나도 주영이 몸에 맞는 폐 기증자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버텨주었다. 93일째가 되던 날 주영이의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우려하던 감염 때문이었다.

 

 

긴 기다림의 고통과 싸우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희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 같았다. 모든 치료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진행됐다. 기적처럼 다시 주영이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일째 되던 날, 소아 폐 기증자가 나타났다. 이제는 이식팀이 나설 차례였다. 어렵게 찾은 기증자였지만 의료진은 수술 여부를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이식될 폐는 주영이의 가슴 크기보다 6cm 가까이 컸다. 주영이네 가족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을 믿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다. 의료진 역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9월 29일 새벽 이식팀이 응급 수술을 준비했다. 한 시간 후 이식한 폐 안으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주영이는 첫 숨을 뱉어냈다.

 

감사로 시작한 새로운 삶      

2011년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원인미상 폐 질환. 원인도, 치료법의 어떤 실마리도 발견하지 못한 채 환자들은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우리 병원으로 옮겨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운데는 유독 임산부와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여성들이 많았다. 갓난아이를 안고 장기이식센터를 찾아온 젊은 아빠의 모습은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수십 명의 환자 중 일부만이 폐이식을 받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필자가 처음 백현정 씨를 만난 건 2012년 봄이었다. 우연히 듣게 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 그들을 직접 만났다.

“지금도 막내 생각만 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눈이라도 마주쳐 봤으면 했는데… 그걸 못했어요. 정말 예쁘게 잘 키우고 싶었는데…”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와 걱정과 염려, 안타까움이 어우러진 감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한 달 전 다시 만난 현정 씨가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늘 현정 씨 옆에 있던 주영이는 훌쩍 커져 있었다. 처음엔 휠체어를 타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었는데 지금은 놀랍게도 무척 잘 걸었다. 이틀에 한 번씩 받으러 오던 투석도 지난해 11월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더는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병원에 날마다 오지 않아 돼 학교에도 입학했다고 한다.

 

“수술 전까지 저희를 돌봐주시던 중환자실 선생님들, 수술해 주셨던 박승일·김동관 교수님, 그리고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기증자와 그 가족분들… 주변 분들의 도움이 굉장히 크고 따뜻했기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고통 속에 있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고 견딘다면 언젠가 다시 건강한 삶이 찾아올 거예요.”

 

힘차게 일어선 주영이네 가족이 앞으로 더욱 행복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Storytelling Writer 이경진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