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11번의 수술 11년째의 삶 2016.05.04

 

남편이 암을 선고받던 날, 정작 다리가 풀린 건 아내였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다 멈췄다.

 

1996년 남편은 그동안 모은 돈에 퇴직금과 은행 대출금을 더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번창했다. 그런데 1년 뒤 IMF 사태가 터졌다. 많은 회사가 부도났고 많은 가장이 직업을 잃었다.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재산을 걸고 시작한 사업은 실패했고, 은행 빚을 갚지 못해 집마저 잃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세 아이와 함께 고향을 떠났다. 남편의 병은 그 때 시작된 것 같다. 

 


암에 걸리다           


사업 실패 후에도 힘든 고비가 여러 차례 찾아왔지만, 남편은 그때마다 잘 이겨냈다. 팍팍한 살림에도 3남매는 잘 자라주었다. 막내딸의 대학 졸업식 날, 남편은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고향에 다녀왔다.

 

다음 날 새벽 잠을 자던 남편이 갑자기 일어나 구토를 했다. 처음엔 위경련인 줄 알았다. 통증이 심해져 찾아간 병원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셨습니까… 간암입니다.”

 

검사 결과, 우엽에 12cm와 8cm 암이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간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1년도 넘기기 어렵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던 세월. 인생의 힘든 고비를 함께 넘기고 막내의 대학 졸업장 앞에서 무너진 남편이 너무 가여웠다. 꼭 살려주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간이식을 가장 잘하는 병원을 찾았다. 암을 발견하고 한 달 만인 2006년 4월 서울아산병원으로 왔다. 


남편의 결과를 한참 바라보던 문덕복 교수(간이식·간담도외과)는 이식 대신 절제술을 권유했다. 적합한 기증자를 찾지 못했던 터라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종양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절제하고 남은 간이 남편의 몸을 유지하기엔 너무 작았다.

 

결국 5개월간 색전술로 암의 크기를 줄이고, 남은 부위는 약물로 키우기로 했다. 의료진의 예측대로 5개월 뒤 종양 부위를 절제한 남편은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다.  

 

 

여행을 떠나다  

        
2009년 암이 재발했다. 이번엔 폐였다. 두 차례의 수술에도 암은 전이와 재발을 거듭하며 근육 속까지 파고들었다. 통증은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힘들어하는 남편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밥 한술 넘기기도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을 괴롭히는 건 따로 있었다. 입원비와 약값, 치료에 드는 비용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경제적 부담은 남편의 투병 의지를 꺾었다. ‘포기하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들은 날 처음으로 남편에게 언성을 높였다.

 

기존의 항암제에 내성이 생겼는지 더 이상 효과가 없게 되자 지난해 8월부터 남편은 병원에 입원해 항암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쯤 류백렬 교수(종양내과)와 나누었던 대화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잘 견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좋은 약이 개발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최선을 다해 살아 봅시다.”

 

환자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류 교수의 말처럼 남편에게 고통 대신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퇴원하는 날에 맞춰 특별한 스케줄을 준비했다.

 

 

“우리 오늘 바다 보러 갈까요?” 절망 대신 희망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희망을 충전하다        

 
항암 주사를 맞고 집으로 가는 날에는 여행하는 일 외에도 함께 낚시도 가고, 손을 잡고 산에 오르기도 했다.

 

마지막 항암 주사를 맞으러 온 남편에게 젊은 담당 의사는

 

“이렇게 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살아줘서 고맙다니… 눈물이 났다. 긍정적인 마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진단받고 얼마나 살고 있습니까?”

 

같은 병실 환자의 질문에 남편은

 

“1년을 넘기면 기적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11번 수술을 받고 11년째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라며 웃었다.

 

얼마 전엔 웃음 치료 강좌도 듣고, 통증 관리 교육도 받았다. 다음번엔 발마사지와 원예치료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암교육정보센터 김소희 코디네이터는 남편을 보고

 

“걸음이 굉장히 씩씩하셔서 환자분인 줄 몰랐다”

 

라며 놀랐다. 지난 11년간 남편은 방사선 치료와 약물 치료, 수술까지 수많은 과정을 꿋꿋이 견뎌냈다.

 

요즘 남편은 더욱 씩씩하게 걷는다. 그래야 그 길의 뒤에 오는 사람들도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이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그래도 일단 떠나면 함께여서 행복해요. 주변에선 포기하자고 했지만 전 포기하지 않았어요. 내 남편이고 내 가족의 아빠니까 살려야겠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준 남편에게 정말 고마워요.”

 

‘그래도 함께 있어 감사하다’는 그들의 행복한 여행이 오래오래 계속되길 기도한다. 

 

Storytelling Writer  이경진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