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상부위장관팀의 내시경 치료건수는 지금까지 약 10,000 건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인 기록이다.
그 기록의 절반 정도가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개인 내시경 치료 건수로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술 건수가 많다는 건 시술 기간이 오래됐다는 것 외에도 환자가 많이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정확하고 빠르게 시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모두 시술 이후의 결과가 좋아야 가능한 일들이다.
우리나라 내시경 치료의 역사는 정훈용 교수의 내시경 치료 역사와 맞물려 있다. 그가 막 전공의를 시작하던 1980년대 말 우리나라에도 간헐적으로 EMR 이라고 하는 내시경 시술이 도입되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ESD 시술로 대체되었는데, EMR보다 한층 더 어렵고 더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한다.)
전공의 2년 차 때 처음으로 대한내시경학회 세미나에서 강의 비디오를 통해 보게 된 내시경 시술 장면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마치 나를 위한 시술 같았죠." 좁은 식도를 따라 위까지 들어가는 지름 10mm 정도의 위내시경을 이용해 병변을 도려내는 내시경 시술은 섬세한 손의 감각과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담력을 요구했다. 당시 많은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내시경 시술에 도전했지만, 대부분 전문적으로 파고 들지 못했다. 정훈용 교수는 첫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뒤 내시경 치료에 더욱 매진했다. 타고난 손재주와 감각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내시경 시술은 재미있었다.
"당구나 바둑을 처음 배울 때 천장이 당구대도 되고, 바둑판도 된다고 하잖아요. 제 경우엔 내시경 시술법의 설계도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더군요."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오래 할 수 있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리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런 끈기와 열정이 꼭 필요하다. 동료 의사가 가족의 시술을 부탁할 만큼 그는 내시경 치료 전문가로 자리를 잡아 갔다. '의사가 신뢰하는 의사'인 그를 찾아오는 환자의 수도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소화기내과를 자신의 전공으로 선택해 누구보다도 빨리 학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굳힐 수 있었던 정훈용 교수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년간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부터 개인이 아닌 팀을 성장시키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그는 '솔선수범형 리더'가 되었다. 팀원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함께 운동도 하고,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파워포인트, 엑셀 등의 교양 강의를 열기도 했다. 의사로서 자신이 경험하고 고민했던 일들을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후배들과 주저 없이 나눴다. 그 결과 현재 우리 병원의 상부위장관팀은 최고의 시술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단합 잘되고, 분위기 좋은 과로도 유명하다. "팀원 모두가 자기 일에 긍지를 가지고 즐겁게 일하는 전문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팀에 그런 전문가들이 많다는 것은 환자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요."
정훈용 교수는 그의 팀원들에게 '사소함의 힘'을 자주 강조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 "환자와 헤어질 때는 먼저 눈을 떼지 말고 최소 2초의 시간을 더 할애해라." 그는 짧은 2초의 노력으로도 환자와 의료진의 사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그만의 원칙이 만들어진 사연이 있다. 1984년 의대 본과 1학년 시절부터 1988년 말 인턴을 마칠 때까지 정훈용 교수는 매주 토요일마다 관악구 난곡동으로 의료봉사를 다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공 시험과 진료 봉사가 겹쳤던 날이 있었다. 시험을 보고 오후가 되어서야 연건동 교정을 나선 그가 진료소에 도착한 시간은 진료 마감 시간이던 오후 5시였다. 텅 빈 진료소를 예상하고 들어간 그의 앞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훈용 선생님은 꼭 올 거다. 만약에 선생님이 오지 않는다면, 다음 주에 다시 와서 선생님께 진료를 받겠다." 30여 명의 환자가 진료도 보지 않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그가 그동안 했던 일이라곤 그저 다른 이들보다 좀 더 긴 시간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나눴던 일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결론은 '소통'이었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나 또한 상대방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강요나 배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의 소통으로 가능한 것이죠. 자주 만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 모두 소통의 방법입니다"
SNS를 통해 자신이 가진 의학 정보를 1, 2차 병원의 의료진들과 공유하고, 자신의 연락처를 공개해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언제든지 질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정훈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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