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사람 사는 병원을 꿈꾸다 2015.01.30

사람 사는 병원을 꿈꾸다 - 위장관외과 유문원 교수

 

2005년 초, 국방부 조달본부 근무지원실에서 근무 중이던 유문원 군의관 앞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2003년 3월, 그에게서 골수기증을 받았던 백혈병 환자의 병이 지난해 재발했다는 내용이었다.
‘환자를 위해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그는 흔쾌히 수술대 위에 다시 누웠다.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1998년 인턴 시절 혈액내과를 돌며 만났던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 그곳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간절함, 그리고 아픔을 보게 되었다. ‘의사로서 나는 환자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는 골수은행협회에 전화를 걸어 골수기증을 약속했다. 그리고 5년 뒤 약속을 지켰다.
“그것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환자는 언제나 처리해야 할 ‘일’, 질환은 풀어야 할 ‘과제’로만 인식되던 때였어요. 그날 이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는 순간 밀려드는 두려움. 수술대 위에서 옷이 벗겨질 때의 부끄러움. 가족들의 걱정 그리고 미안함.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 괜히 주눅이 들더군요.” 환자복 안에 숨겨진 환자의 약한 마음도 알게 됐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지만, 환자복을 입고 병실, 수술장, 회복실을 지나던 그때의 느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위암은 쉬운 암?

 

위장관외과 유문원 부교수는 위암을 수술로 치료하는 외과의사다.
수년 전만 해도 국내 발병률 1위, 위암은 한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암이었다.
그런데 건강검진이 늘면서 위암이 초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완치율이 매우 높아졌다. 또한 조기위암에 있어 내시경이나
복강경 수술 등 최신 치료법들이 많이 도입되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위암은 조기에 발견되면 5년 생존율이 90% 이상이다.)
그러나 부동의 국내 발병률 1위, 위암은 결코 쉬운 암이 아니다.
어느 수술도 만만한 수술이 없다. 특히, 자각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환자의 암은
꽤 진행된 채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더욱 치명적이다.

그러나 유문원 부교수는 통계로 섣부르게 환자의 삶을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009년 간 전이가 있는 위암 환자를 직접 경험한 이후부터다. “평균 1년입니다.” 그가 시한부 선고를 내렸던 환자는 위와 간을 모두 절제하는 힘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여전히 재발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의사는 누구인가?

2000년 서울대병원 전공의 2년 차 때였다. 의약분업으로 인한 전공의 파업이 일어났다.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줄거라 믿었던 국민들이 의사들을 향하여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에 속상했고 간호사들조차 호의적이지 않음에 놀랐다. ‘의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자신을 향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질환과 치열하게 싸우는 의사선배, 동료들을 보며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누구보다 최선인 사람이 의사’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실천이라도 보여준다면 의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족 같은 의사

‘가족 같은 의사.’ 그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를 만나면 잘 치료받을 수 있다는 기대, 그 이상을 얻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유문원 부교수를 만난 환자들은 그에게서 사람과 사람이 닿았을 때의 체온을 느낀다. 외래를 찾은 한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수술장에 누워 잔뜩 긴장해 있던 제게 ‘제가 왔습니다. 수술은 잘 될 겁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순간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다른 환자는 진료실 문이 열리자 자리에서 일어나 맞아주고 손을 잡아주는 그에게 감동했다고 말했다.


“유능한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에게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의사요.” 끊임없이 고민하는 의사, 그 고민의 정답은 늘 사람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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