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나쁜 뇌를 써야 행복해 집니다. 2014.07.14

나쁜 뇌를 써야 행복해 집니다. - 신경과 강동화 교수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강동화 선생님을 만나러 가기 전, 한 권의 책을 소개받았다.


'서늘한 광채'라는 제목의 이 책은 미란다라는 철학과 학생이 지도교수 실종사건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소설로 강동화 선생님이 직접 번역을 했다고 한다. 대체 뇌졸중을 연구하는 의사가 왜 이런 미스터리 소설을 번역했을까? 그 이유는 번역 제의를 받는 순간 가슴이 뛰어서라고 한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알고 봤더니, 아무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이 기막힌 인과관계를 만들며 씨줄날줄을 엮어가는 것이 선생님의 인생... 동화책, '신밧드의 모험'을 읽는 기분으로 강동화 선생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책을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인생의 팔 할은 공부에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 우물만 파고 살았던 선생님. 마흔 살의 어느 날, 병원이라는 좁은 공간과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답답해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낯선 얘기를 나누고 싶던 선생님이 찾아낸 일탈의 공간은 '치유하는 글쓰기'와 ‘스토리텔링’ 글짓기강의. 언젠가는 책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생각나서였다고 한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끼리 소박한 문집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 할 수도 있었던 마흔 살, 사춘기의 반항은 번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며 1년이나 더 길어졌다. 글짓기 선생님이 '뇌 전문가인 선생님이 꼭 번역을 해야 한다'며 '서늘한 광채'를 소개했던 것이다.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이지만, 그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논리적인 바탕은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과정이기에 뇌신경학자인 선생님이 번역자로 적격이었던 것. 그래도 번역에는 문외한이었던 선생님이 덥석 그 청을 수락한 이유는, 그냥 한 마디로 '책 소개를 받고 가슴이 뛰었기 때문'이란다. 선생님은 6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번역하느라 매일 새벽과 밤마다 인문학, 철학, 뇌과학, 문학을 넘나들며 괴롭고도 행복한 지적 탐험을 하며 1년을 보냈다.


화장실에서의 1분이 제 인생을 결정했습니다.

 

선생님의 전공은 MRI를 이용한 뇌영상 연구. 뇌영상을 보고 뇌졸중을 진단하고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데는 스스로 '독수리의 눈'이라 자부할 만큼 실력자이다.
선생님이 이런 특수 분야를 연구하게 된 건, 전공의 시절 화장실에서 지도교수님과 함께 일을 보게 된 때문이라고 한다. 볼일을 보고 지퍼를 올리던 지도교수님이 툭 던진 말씀이 '새로 들여오는 MRI기법, 네가 맡아서 연구해봐라.'
그 이후로 뇌졸중 환자의 MRI 영상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해석하고, 그 자료로 논문을 쓰는 일련의 과정을 선생님이 맡게 되었다.
신경과 의사로선 MRI 영상을 누구보다 자주, 그리고 많이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뇌영상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허옇고 물렁한 기름덩어리인 뇌의 매력에 푹 빠져, 무슨 애인 사진이라도 되는 양 MRI 영상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살던 선생님...
10년 넘게 뇌졸중 연구에 몰두하던 어느 날, 충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뇌졸중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연구를 시작하겠어!

과감히 뇌졸중 연구를 잠시 내려놓겠다는 결심을 한 선생님. 한술 더 떠서 의사가 한 명도 없는 곳으로 해외 연수를 떠났다. 하버드 대학교 시각심리학 연구소. 그곳에서 선생님은 심리학자, 공학자등과 만나 새로운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10년간 연구할 새로운 화두'를 발견했다. '인간의 뇌는 어떻게 학습하고 소통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뇌영상을 통해 풀어내는 것. 심리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전공인 뇌과학과 심리학, 뇌영상의 교집합을 발견하게 된 것. 그 출발은 일탈처럼 보였지만, 선생님의 연구 분야를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1년 3개월의 연수 후 귀국하여, 선생님은 서울아산병원에 ‘Vision, Image, and Learning Lab’이라는 새로운 연구실을 열었다. 그 연구실의 영어 줄임말은 VILL (마을).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마을에 모여 학문의 융합을 이루는 것이 선생님의 작은 소망이라고 한다. 지금 VILL 연구실은 시각지각학습을 이용해 뇌졸중 환자의 시야장애를 호전시키는 치료법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시야장애는 아직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 증상이다.)


나쁜 뇌를 써야 행복해집니다.

강동화 선생님의 인생이 다채로운 경험으로 채워진 건, 선생님이 가진 특유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를 만나면서 얻은 교훈 때문이기도 하다. 전공 특성 상, 선생님이 만나는 환자는 대부분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람들. 멀쩡하던 사람이 반신불수가 되고, 말을 못하게 되는 불행한 병이 뇌졸중이다. 활개 치며 세상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내 몸 하나를 제대로 못 가누게 되면, 심각한 우울증이 올 것 같은데... 선생님이 만난 어떤 환자들은 의외로 행복했다. '저 몸이 됐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지?' 궁금했던 선생님은 환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행복하세요?’ 대답은 ‘네, 만족합니다 선생님.’ 건강을 잃고 행복을 얻은 뇌졸중 환자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현실을 부정하든, 왜곡하든, 망각하든 우리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뇌는 수많은 자기합리화의 꺼리들을 찾아낸다. 사람들은 왜곡, 망각, 자기합리화가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자 애쓰는 뇌란 존재는 얼마나 기특하고 배려심이 많고 사랑스러운가? 그런 뇌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선생님은 책을 한 권 썼다. 그 제목이 바로 '나쁜 뇌를 써라'다. 책을 써서 세상에 알리고 싶을 만큼 뇌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강동화 선생님.


모르긴 몰라도 오늘도 선생님은 MRI사진을 들여다보며 뇌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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