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는 증상만 보고, 의사는 질병만 보게 되죠 2014.07.14

환자는 증상만 보고, 의사는 질병만 보게 되죠 - 이비인후과 정유삼 교수

 

그 상쾌했었던 기억이 10년을 가더군요.


어느 날, 소년은 심한 축농증에 걸렸다. 하루 종일 훌쩍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코를 풀다가 잠들면, 차오르는 콧물 때문에 깊이 잠들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비인후과에 다녀온 날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던 피곤과 두통과 수면부족이 일시에 날아가면서 온 몸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코로 숨을 쉰다는 건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 상쾌함은 축농증을 치료하고 10년이 지난 뒤에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소년은 결국 이비인후과 의사가 됐다. 봄비에 황사가 말끔히 씻겨나간 것 같은 촉촉하면서도 깨끗한 기분을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만병이 달려듭니다.

깨끗한 의사 가운을 입고, 각종 자료와 책들에 둘러싸여 있는 정유삼 선생님은 한때는 코흘리개 어린이였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는 말쑥한 모습이었다. 30년 세월동안 달라진 건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일단 선생님의 목표, 축농증의 발병률이 꽤나 낮아졌다. 요즘은 코흘리개 어린이가 적어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엔 축농증이 선생님의 주적이었다면, 요즘 제일 골치를 섞이는 병은 '수면무호흡증'. 자면서 코를 골며 숨을 안 쉬는 증세다. '수면무호흡증'이 무서운 이유는 사람에게 잠은 일종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점. 잠을 제대로 못자니 고혈압, 당뇨, 비만, 스트레스 등등이 생기며 온몸이 서서히 망가지게 된다.

실제로 중증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경우, 10년 후엔 치사율이 일반인의 3배나 높아진다고 하니, '잠을 못 자면 만병이 달려든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수면무호흡증은 어른들에게 성인병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아이들의 경우엔 발달장애를 동반하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잠을 푹 자지 못한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져 학습장애가 올 수 있고, 성장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키가 덜 자라고 소아비만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코를 골고 잠을 잘 못자는 이유는 편도선이 비대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기도가 좁혀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직접 연구한 결과, 편도선 제거 수술을 한 아이들을 추적 관찰해보니, 수술 후 정상 성장곡선을 따라가고 비만이었던 아이들은 살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잠을 푹 자는 것은 건강 유지에 핵심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은 침대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죠.

 

환자 보랴, 수술하랴, 연구하랴... 선생님의 하루는 꽤나 빡빡하게 돌아간다.
헌데 얼마 전부턴 거기에 중요한 임무 하나를 더 맡게 되었다.
바로 'PI(Performance Improvement) 실 실장님'으로 임명된 것! PI실은 병원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환자 안전사고에 다각도로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서다.
PI실 실장님은 감염이나 의료사고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겠지만, 여닫이문을 미닫이로 바꾸거나, 침대 디자인을 환자의 질병에 따라 바꾸는 등 의료진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짚어보아야 하는 역할이다.
덕분에 신혼살림 장만하면서도 신경 쓰지 못했던 침대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할 일이 생겼다는 선생님...
환자 돌보기에도 빠듯한 의사에겐 은근히 맡기 싫었던 임무는 아니었을까?
헌데 선생님은 PI 센터 일이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고 하신다.


환자는 증상만 보고, 의사는 질병부터 보게 되더군요.

병명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가 어떻게 아픈 지에만 몰입돼 있는 환자와, 질병을 연구 대상이자 도전 과제로만 인식하는 의사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소통 부족' 서로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기계를 수리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질병 너머의 환자를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라는 게 선생님의 지론이다. 헌데 의사가 의사 고유의 업무에만 몰입 하다 보면, 결국 질병 자체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문에 수많은 의사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병원 밖의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것. 선생님에겐 'PI실 실장' 이라는 일이 그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외래 환자 한 명을 보는 건 그 환자 개인을 돕는 일이지만, PI실 실장은 병원 전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정유삼 선생님. 자신에게 어떤 일이 추가적으로 주어졌을 때, 선생님처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긍정적인 마인드가 서울아산병원을 조금 더 믿음이 가는 병원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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