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순간들 2019.05.16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순간들 - 치과 이현헌 교수

 

출생 1일 차부터 40대 발달지체 장애인까지 다양한 환자가 소아치과를 찾는다. 잔뜩 겁먹은 환자를 대하는
이현헌 교수의 진료 원칙은 단순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엄격하면서도 솔직하게 다가가면 환자는
속마음까지 보여줄 듯이 입을 크게 벌린다. 이어지는 이 교수의 지휘 아래 진료실은 웃음과 회복을 부르는
마법의 공간이 된다.


내가 만난 아이들 나를 키운 아이들

2013년, 이현헌 교수는 우리 병원에 첫 출근을 하자마자 크게 놀랐다. 이전의 대학병원에서 보기 힘들었던 중증 환자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일반 병동과 소아치과가 병원에 함께 있어 방문하기 쉬웠다. 타과 의뢰도 용이했다.

“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케이스가 우리 병원에 다 모여 있더라고요. 문제는 워낙 희귀해서 제가 치료법을 물어볼 데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환자마다 교과서와 논문을 뒤져가며 공부해야 했죠. 시간이 지나자 치료 정보를 들은 전국의 희귀 증상 환자와
장애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전신질환 환자의 치과치료, 안면기형 교정치료, 치아의 맹출장애 등. 개인병원에서 꺼리는 치료를 이 교수는 마다하지 않았다. 경험과
실력은 차곡차곡 쌓였다.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힘든 과정이지만 오랜 치료 끝에 ‘이제 안 오셔도 됩니다’라고 치료 종결을 알리면 아이들이 활짝 웃어요. 그
모습에 저도 덩달아 신나죠. 어릴 적부터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나 내성적인 성격, 세상에 부정적인 시선을 갖던 아이들의 마음이
회복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 자신 있게 행동할 거란 기대도 생기고요. 이런 보람을 어디서 또 느껴 보겠어요?”


서울아산병원이라서 만나는 슬픔

 

길랑바레 증후군 환자도 우리 병원에서 처음 만났다. 여섯 살에 갑작스러운 감염
증상으로 시작되어 전신마비가 온 여자아이였다. 무의식적으로 이를 가는 증상
때문에 이가 닳거나 빠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치료 초반부터 당황스러웠다.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덜 갈리게 하는 것이 최선일뿐 회복은 불가능했다.
결국 환자는 2년간 이어진 치료를 중단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마음이 불편해요. 우리 병원이 마지막 종착지였을
텐데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고요. 일반 소아치과에선 상상하지 못할 일이 우리
병원에선 종종 일어납니다. 치과 장치를 맞춰놓고 나타나지 않아 연락했더니 이미
세상을 등진 친구도 있었죠.”


중증 환자를 만나면 측은함이 앞설 때가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덜 아프거나
비용 부담이 적은 쪽으로 치료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나 최소한의 치료가 때론
독이 되기도 했다.
 

“충치 염증 때문에 항암을 미룬 환자였습니다. 이미 많이 지친 상태일 테니 최대한 부담이 덜한 쪽으로 치료했죠. 치과 치료는 무사히
마쳤는데 항암을 시작하자 없던 염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면역을 없애자 억눌려있던 염증이 나온 거죠. 중증 환자에겐
만약의 경우를 모두 고려해 엄격하게 치료해야 한다는 걸 간과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 덕분에 저도 많이 배우고
성장했죠.”


서로 길들이며 나아간다

요즘 치과계에선 스캔한 3D 모형과 CT를 토대로 치과 보철물을 만들어 최적의 치료 결과를 최단 시간에 제공하는 디지털 치과 진료가
한창이다. 성인에겐 이미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지만 소아 환자에 적용하려면 스캔 장비의 사이즈를 줄이고 반응 속도는 높여야 한다.
아이들의 산만한 움직임으로 인한 오차가 크기 때문이다.

“아직 연구 단계인데 도입되면 환자들의 치과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왕이면 더 예쁘고 튼튼한 치아를 선물하고
싶어요.”


소아치과 의사에게 필요한 자질로 이 교수는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첫손에 꼽았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내 자식처럼 대하지 않으면 베드에 눕히기도 버거운 진료가 반복됩니다. 신뢰만 잘 쌓아 놓으면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잘 따라오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의 진료 원칙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픈 건 아프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고, 아는 건 모두 설명해주며, 어려운 진료라고 피하지 않는 것. 그런 이현헌 교수와 아이들은
이인삼각 경기처럼 손발을 맞춰 아픔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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