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작은 생명을 지키는 에너자이저 2014.07.09

작은 생명을 지키는 에너자이저 - 산부인과 원혜성 교수

 

“초음파사진을 꺼내 든 예비 엄마가 태아의 모습을 마치 자신의 손바닥 보듯 또렷이 볼 수 있는 것은 생명에 대한 본능적 사랑 때문일 것이다. 뱃속의 아이 한 명 한 명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원혜성 교수는 타고난 산부인과 의사다.”


또 하나의 생명이 몸속 깊숙이 자리 잡는 순간부터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겁쟁이'가 된다. 몸속의 생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280일 동안 모든 것이 걱정스럽기만 한 예비 엄마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을 볼 수 있는' 산부인과 원혜성 교수와의 만남을 행운이라 말한다.


예비 엄마들의 희망

초음파를 통한 정확한 산전 진단과 태아 치료로 임산부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산부인과 원혜성 교수는 최고의 의술뿐 아니라 자상하고 세심한 배려로 예비 엄마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의사다. 그래서인지 임산부가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와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에는 유독 원 교수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글이 많다.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시원한 목소리로 기분 좋게 진료해 주시고 질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답을 주시니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받고 있습니다. 첫 아이 출산까지 선생님 믿고 잘 따라가겠습니다."
"임신 12주 때 태아 수종을 진단받고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원혜성 교수님을 만나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딸을 낳았습니다. 건강하게 잘 키우겠습니다."


태아치료의 독보적인 리더가 되기까지

 

원혜성 교수가 산부인과 전임의로 있던 1995년, 당시 태아의 심장이나 장기이상 등을 진단하던 곳은 산부인과가 아닌 영상의학과 (당시 방사선과)였다. 산부인과에서도 산전 초음파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원혜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방사선과 교수였던 유시준 박사 (現 캐나다 토론토 어린이 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초음파를 배웠다. "산부인과 진료를 보고, 식사 시간을 아껴서 초음파 책의 한 챕터를 읽은 다음 초음파실로 뛰어 내려가면, 마침 그 챕터에서 다뤘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스승 유시준 박사의 기억 속에 원혜성 교수는 그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모인 지원자 중 가장 유능하고,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쏟아낸 제자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태아치료를 시작한 일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원혜성 교수에게도 좌절의 순간은 있었다. 태아 초음파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뛰는 '태아 빈맥'의 진단과 치료에 성공하면서 산전 진단에 한창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었지만 1999년, 양쪽 폐에 물이 찬 태아 수종 환자에게 시도한 국내 최초의 태아 *션트 시술이 실패로 끝나면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때 션트 시술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 준 사람이 바로 그 수술로 아이를 잃은 부모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반드시 성공하셔야 합니다." 이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한국 여성에게 맞는 기구를 구해 시도한 션트 시술이 성공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션트 삽입술은 90%에 가까운 성공률로200건 이상이 진행됐다. 션트 뿐 아니라 태아수혈, 고주파 전기소작술 등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태아 치료 시술이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에서 국내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센터장인 그의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가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찾아오는 보호자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설득하면 결국엔 따라온다. 의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면 치료의 반은 된 거라고 생각한다."

* 션트 : 개복하지 않고 태아의 몸에 관을 꽂아 흉수나 복수 등에 찬 물을 밖으로 빼는 시술


하나의 목표를 향한 끈기와 열정

2002년, 세계적인 태아치료전문기관인 미국 UCSF (캘리포니아대학병원)으로 연수를 가게 된 원혜성 교수. 그곳에선 이미 태아 내시경을 이용한 치료와 양(sheep) 실험을 통해 신경관결손의 태아치료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소아외과의사로 구성된 센터의 유일한 아시아 출신 여자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는 그곳에서 'sheep's mom(양 엄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험용 양의 자궁을 빠르고 깔끔하게 닫는 그의 봉합 실력을 보고 이후 모든 양 수술의 봉합을 그에게 맡겼기 때문이었다. "의대에 오기 전엔 손재주 좋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의대에 들어와서 타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밤새도록 연습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황무지와 같던 태아치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국내 최초의 태아치료센터 개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도 모두 그런 끈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숱한 연습의 결과라고 말했지만 한 가지를 향한 열정과 끈기는 타고나지 않곤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날이 새도록 부단히 훈련을 반복하던 수련의 때나 밀려드는 환자를 보기 위해 지독히도 자신의 삶을 절제하며 사는 지금이나 원혜성 교수가 하고 싶은 일은 단 한 가지, 바로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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