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현미경 속 우주를 만난 후 2018.08.17

현미경 속 우주를 만난 후 - 안과 김윤전 교수

 

우리 병원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김윤전 교수의 꿈은 신경과 의사였다. 안과에 배치받은 인턴 첫 달, 그녀는
차흥원 교수의 수술을 어시스트할 기회를 얻었다.
“수술장에서 현미경으로 본 환자의 눈 속엔 크고 깊고 무궁무진한 우주가 담겨 있었어요. 우주를 정교하게
다루는 수술에 푹 빠져버렸죠. 수술 10분 만에요. 안과로 마음이 돌아서는 순간이었어요.”
그 후 백내장 수술을 한 환자들의 극적인 변화를 보면서 김 교수는 이렇게 보람된 일에 평생을 걸자고
마음 먹었다.


망막 파트에 던진 출사표

십여 년 전만 해도 망막 질병은 치료법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환자의 불편에 공감하면서도 그리 밝지 않은 예후를 알릴 수밖에
없었다. 임상연구도 조금 덜 나빠지게 하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졌다. 새내기 의사에겐 우울해 보이는 파트였다. 하지만 한번 망가지면
돌이키기 힘든 신경조직이라는 점은 오히려 김 교수의 도전의식에 불을 지폈다. '미지의 분야인 만큼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지 않을까?'
그녀가 안과의사로 성장할 동안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망막박리 등 실명을 일으키는 망막 질환의 진단 및 치료도 발전을 거듭했다.
시력을 회복하거나 적어도 유지할 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열심히 치료하면 된다는 합리적인 안심을 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변화였죠.”

김 교수는 지난해 안과 윤영희 교수의 국내 최초 인공 망막 이식수술에 참여했다. 인공 망막은 빛만 겨우 구분하는 실명 상태의
환자에게 영상 정보 수신기를 이식한 뒤 망막신경세포를 자극해 뇌가 시각 패턴을 인식하도록 하는 장치다. 일반적인 안과 수술이
1단계의 상태에서 10단계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라면, 인공 망막 수술은 0에서 1단계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할수록 열정도 커져요. 요즘은 망막 질환에서 시세포의 변성을 줄이고 시세포 사멸을 보호할 방법을 연구 중이고요.
앞으로 근본적인 유전자 연구를 통해 시세포 재생 연구로도 확장하고 싶어요.”


희망으로 끌고 웃음으로 밀면서

 

3년 전, 김 교수는 의식 없는 환자의 수술을 의뢰받았다. 감염 병소가 온몸으로
혈액을 타고 돌다가 양쪽 눈에 박힌 내인성 안내염 환자였다. 간암과 간성혼수,
패혈증까지 진행된 환자는 생존 자체가 불투명했다. 그를 위해 소화기내과와
감염내과, 마취통증의학과, 간이식 파트 등 많은 의료진이 모였다. ‘이렇게 안 좋은
상태의 환자에게 전신마취와 안구 내에 약물을 반복 주입해야 하는 치료가 과연
의미 있을까?’ 의문이 앞섰다. 그래서 주치의와 더 많이 상의했고 수술 자체에만
집중했다.

“다행히 여러 과에서 시행한 치료가 잘 진행됐어요. 지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오세요. 제가 그때 배운 게 있어요.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최대한의 희망과 노력으로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녀가 찾아낸 의술의 핵심은 결국 의지와 희망이었다.
진료 하루 전, 김 교수는 환자들의 차트를 보며 미리 상담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밝은 인사로 환자를 맞이한다.

 

“‘어우, 괜찮으신데요?’ 이 한마디면 환자들의 돌아가는 발걸음이 달라져요. 제가 잘 치료해서 모든 환자에게 그 말을 꼭 들려주고
싶어요.”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김 교수의 친화력에 몇몇 환자는 따뜻한 포옹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또 칭찬카드에 이런 감사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두렵고 무서운 수술에 임하면서도 이 분이라면 걱정할 게 없다는 믿음과 의지가 생겨 두 번째 수술까지 잘 받고 시력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의사 하면 저는 망설임 없이 김윤전 교수님을 자랑하고 알리고 싶습니다.’

 

메모에서 찾은 실마리

환자와의 대화 중에 김 교수는 수시로 노트에 메모를 적었다.

“적어둔 환자의 질문이나 이야기에서 치료 힌트와 연구 아이디어를 곧잘 얻곤 해요.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요.
우리 병원엔 다양한 케이스가 많으니까 저한텐 환자가 교과서죠.”


최근에는 녹내장 파트와의 협진 과정에서 망막 전막이 동반된 녹내장 환자들을 의뢰받았다. 녹내장과 망막 전막 문제를 동시에 가진
환자들은 불안해했다. 이에 김 교수는 수술 전후의 시야 변화를 분석해 수술 치료의 안전성을 점검했다.
또 췌장이식 환자들을 만나면서 얻은 아이디어로 이식 수술 후 합병증의 일종인 당뇨망막병증의 장기적인 안정화와 시기별 차별화된
접근의 필요성을 연구했다. 꼼꼼하고 분석적인 그녀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수술에 대한 부담이 컸던 초창기 시절에 교수들의 수술 과정과 특징을 일일이 적는 게 습관이 됐어요. 말하자면 제 오답 노트였죠.
요즘은 환자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적어요. 진료 때마다 환자와 저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니까요.”


최고의 의술은 오랜 노력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빚어진다는 것을 김윤전 교수의 메모는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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