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고통 속에서 꽃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 2014.09.23

‘고통 속에서 꽃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 -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에게는 그보다 훨씬 의술이 뛰어난 두 형이 있었다.

큰형은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조절해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사다. 둘째 형은 큰 형만은 못하지만, 작은 병이 생겼을 때 미리 손을 써서 병이 크게 자라는 것을 막는다. 제일 의술이 부족한 화타는 큰 병이 생긴 후에야 치료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명의라고 칭송하지만, 실은 형님들과 비교해보면 화타의 실력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는 이야기다.


화타와 두 형님의 이야기를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대비해 본다면 어떨까?

화타의 환자들은 모두 세상의 쓴맛을 제대로 본 어른들, 작은 형님은 아마도 아파하는 젊은이와 청소년, 그리고 큰 형님의 환자는 행복한 어린이들이 아닐까? 마음의 병이 얼마나 깊은지는 환자의 나이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병을 고치기 어렵고, 반대로 아무리 상처가 많아도 환자가 어리다면 회복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선생님이 자신의 전공을 결정하게 된 것도 인턴시절,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은 엄마나 친구를 때리거나, 학교 유리창을 깨거나, 학교 친구들에게 삥을 뜯거나, 오토바이를 훔쳐서 타고 다니다가 다치거나,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거나, 손목에 자해자국이 많이 있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까칠하고, 쉽게 남의 탓을 하고, 욕도 툭툭 던지는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번 마음을 연 아이들은 놀랍도록 달라졌다. 아무리 뒤틀려있는 아이라도 자신을 믿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생기면 마음을 열어 보였다.
‘마음의 상처는 치료되는 데 오래 걸린다’ 학교에서 배웠던 아픈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김효원 선생님은 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막상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된 다음에 아이들을 나아지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소아청소년 환자의 경우, 엄마 아빠 비롯해, 형제, 자매, 필요할 땐 조부모까지 아이의 상처와 관계가 있는 모든 가족을 상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선생님이 절대 거절하지 않는 부탁이 있다. 바로 부모들을 만나는 강의이다. 요즘의 부모는 아이들 키우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부모가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선생님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부모들을 만나고 있다. 선생님은 빨래터에 상주하는 동네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언제든 부담 없이 찾아와 애들 키우는 문제를 상의할 수 있는 그런 할머니 말이다.


김효원 선생님의 연구실 한쪽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비롯해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와 카드로 장식돼 있다.

아이들에게서 받은 카드 한 장 한 장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는 선생님. 요즘 같은 시대에 손 글씨로 카드를 보내고, 그걸 소중히 간직하는 관계.... 무척이나 아날로그적이지만, 여기엔 정신건강의학과라는 특수성이 있다. 선생님은 길거리에서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짧게 눈빛을 교환하거나, 슬쩍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 지나친다. 그 이유는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서다. 선생님의 환자 중엔 선생님이 종종 들러 햄버거를 사먹는 가게의 매니저도 있다. 그 매니저는 청소년 시절 선생님과 함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 추억과 반가움은 두 사람만 아는 짧은 눈인사로 대신한다. 대신 환자들은 조용히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가끔은 변하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지치다가도 연구실 한쪽의 카드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 선생님. 그 속엔 이런 문구가 하나 적혀 있다. “고통스러운 존재 안에서 꽃을 꺼내서 보여주는 사람”. 바로 김효원 선생님을 묘사한 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감사 인사일 것이다. 김효원 선생님이 동글동글 부드러운 인상에 아이처럼 순한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어쩌면 그 편지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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