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직결된 일을 전공 삼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간 파트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중에서도 그를 사로잡은 건 간이식 수술이었다.
레지던트 기간 내내 간이식 관련 책과 논문을 뒤져봤지만 수련하던 병원에선 환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목이 말랐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학회를 찾아다녔다. 1997년 레지던트 4년 차 때 유독 한 병원에서 엄청난 양의 간담췌, 간이식 관련 논문이 쏟아져 나온다는 걸 알았다. 논문의 출처였던 서울중앙병원 (現 서울아산병원) 간담췌, 간이식팀과 김기훈 교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불운이었을까. 김기훈 교수가 서울아산병원 간담췌, 간이식팀에 합류했던 1998년은 국내 간이식 역사로 보면 도약의 잠재기였다. 합류 직전이던 1997년 8월 살아있는 사람의 간을 이식하는 성인 생체 간이식이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참고로 1994년 12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소아 생체 간이식 국내 최초 시행함)
성공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간이식 수술은 수술 후 관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전임의 1년 차였던 그와 최동락 교수(現 대구 가톨릭대 외과)는 수술방과 진료실을 오가며 환자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했다. 말 그대로 병원은 격전장이었다. 병원을 떠날 수 없었다. 1년간 외출 횟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러니 헤어스타일에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4시간 수술 모자를 쓰고 있다 보니 머리카락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 사이 외과의사로서의 열정도 자랐다. “당시 생체 간이식 생존율은 70% 정도였어요. 팀원들은 생체 간이식 수술 환자 10명 중 살아난 7명보다 잃어버린 3명의 환자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죠.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모두가 워커홀릭이 됐습니다.”
그 결과 1999년 간이식팀의 수장이던 이승규 교수에 의해 변형우엽술이 세계 최초로 성공하게 됐고, 생체 간이식 생존율은 95%까지 올라갔다. 이후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들었다. “사실 전적으로 시간이 없어 이발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이렇게 머리를 기르고 외출을 했는데 사람들이 의외로 장발이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이렇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간이식 및 간담도 외과 김기훈 교수는 간이식 외에도 간암 환자의 간 절제술을 주로 한다.
최근 간암 치료에 복강경과 로봇을 이용한 수술 건수가 늘고 있다. 절개 부위가 작아 출혈과 통증이 적고, 회복기간도 빨라 후유증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고도의 정밀도가 필요한 복강경-로봇 수술을 하기 위해선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경험 또 하나는 감각이다. 복강경이나 로봇 수술같이 난이도가 높은 수술도 결국 개복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가 잘한다. 응용할 수 있는 힘은 기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레지던트를 마친 1998년부터 2014까지 17년간 세계 최고 서울아산병원 간담도, 간이식팀에서 수술의 ABC를 배운 그다. 8시간 가깝게 걸리던 수술 시간을 3시간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오랜 시간 쌓은 경험의 결과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학습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본이 잘 닦인 사람은 순식간에 익힐 수 있다.
2007년 4월부터 지금까지 간센터에서 실시한 복강경-로봇 간 절제 수술은 현재 450건으로 단일 수술자로서는 국내 최다 건수를 자랑한다. 수술 성공률도 100%를 기록했다.
현재는 합병증 없이 적응증을 넓히는 방법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이 길은 오래가야 하는 길이에요. 결코, 단기간에는 결과를 얻을 수 없죠. 생명을 지키는 일에 ‘이 정도면 됐다’ ‘완벽하다’ 그런 건 없어요. 완벽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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