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거듭된 질병을 거스르는 도전 2021.06.18

거듭된 질병을 거스르는 도전 - 소화기내과 최종기 교수

 

우리나라 인구의 4%가 B형간염 보균자다. 약이 없던 3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질환이다.
최종기 교수의 가족도 그랬다. 모계 수직 감염병인 까닭에 외할머니의 네 자매와 어머니의 형제들이 간경변증
및 간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외삼촌이 30대 후반에 진행성 간암으로 6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웠죠. 당시 의대생이었던 저는 간 치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한 것도 간 질환 분야의 최고 병원이기 때문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끝을 볼 때까지

진료실에 젊은 아들과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자신 때문에 아들도 B형간염이라며 자책했다. 최 교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의 어머니도 자주 했던 이야기다.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한 과정은 최 교수를 간 질환 전문가로 만들었다.

“어머님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약 잘 먹고 검사만 꾸준히 받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요. 아마 10년 후면 신약도 개발될 겁니다.”

불가항력적인 가족력이라는 점 말고도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간암은 주로 40~50대에 발생하는데 이는
한 가정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간 질환 사망의 가장 흔한 원인이 바로 B형간염이다. 가깝게는 두 외삼촌의 죽음을
보았고 진료실에서는 환자들의 깊은 한숨을 듣는다. 최 교수가 부지런히 B형간염 신약 개발과 동시에 간 질환 예후를 조기 발견하는
예측 모델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다. 최근에는 B형간염 경구 항바이러스제가 도입된 이후 20년간 간경변증으로의 진행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반면, 만성 B형간염 환자들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고령의 간암 발생이 오히려 증가한 국내 만성 B형간염의 역학 내용을
밝혀냈다. 일관된 연구 주제를 파고들수록 우수한 논문 성과로 이어졌다.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듯 LG화학 미래의학자상(2019)과
신진의과학자 대웅학술상(2020)을 수상했다.

 

실패한 도전 소중한 경험

 

그의 성장에는 뼈아픈 도전기가 숨어있다. 공보의를 마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떠났다. 전 세계 리딩 그룹에 속하고 싶다는 열망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메이요 클리닉에서 보수 없이 리서치 펠로우로 일했다. 그리고 1년 후 시카고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했다. 미국의 치료 패턴을 경험하고 독립된 진료를 하고 싶은
욕심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환자의
전화만 와도 숨고 싶어졌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큰 건 그뿐이 아니었다.
간 질환 환자가 많지 않은 미국에선 1년 내내 일해도 한국에서 한 달 동안 보는
환자 수에 미치지 못했다.

“3년을 채우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도전 결과만 보면 실패일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후회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요즘도 힘들 때면 미국에서 쓴 일기장을
들춰봐요. 당시의 좌절감이 떠오르며 ‘지금은 최소한 환자와 말이 통하잖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운 좋게도 제가 돌아온 시기에
서울아산병원의 간 분야가 엄청난 성과를 올리며 이미 리딩 그룹으로 올라서
있었습니다. 돌고 돌아 제 꿈에 다가선 거죠.”

 

교수로 발령받은 후 전공의 대상 임상연구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미국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단계별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연구에 매진해야 할 전공의, 전임의에게 실질적인 무기를 쥐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노하우가 단 한 명에게라도 잘 전달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묻고 신중하게 결정하다

최 교수는 급성간부전으로 실려 온 36세의 환자를 잊을 수 없다. 간이식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지만 마땅한 공여자가 없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뇌부종이 발생했다. 연명 치료를 결정해야 했다.

“주말이니까 딱 이틀만 더 기다려봅시다.”

월요일에 출근하자 기적처럼 환자의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건강하게 외래에서 만난다.

“‘만약 내가 환자를 포기했다면?’ 의사의 태도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어떤 결정이든 신중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일까. 명확한 근거를 기준으로 더 많은 대안을 환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그의 원칙이자 목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근거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 임상 연구가 다른 연구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요. 우리
병원의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역학과 통계학도 폭넓게 공부해나갈 겁니다.”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길은 실패를 통해 다듬어지고 집요해진다. 환자에게 닿는 답을 찾을 때까지 질문과
도전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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