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그 음악을 꺼 주세요. 수술 중엔... 2014.10.15

그 음악을 꺼 주세요. 수술 중엔... - 대장항문외과 임석병 교수

 


대장항문외과, 임석병 교수님은 ‘저는 칼잡이입니다.’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시작하셨다.

칼잡이란 단어는 무협 영화에서 얼굴에 흉터 하나 새기고 등장하는 강한 캐릭터가 생각나게 하는 단어다. 하지만 조심스럽고 친절한 선생님의 모습과 ‘칼잡이’는 서로 닮은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다. 교수님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대에게 결정적인 증거라도 보여주듯이 비밀 하나를 더 얘기해 주셨다. 그 비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과 의사들은 모두 이중적’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일까?


환자들이 말하는 외과 의사들은 대부분이 호감형이라고 한다. 편안하고 시원시원한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장 안에 들어갔을 때, 즉 환자가 보지 못하는 외과 의사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수술 성공이라는 목표에 극도로 집중한 의사들은 긴장, 초조로 온몸에 날이 서 있는 상태다. 10분짜리 받아쓰기를 해도 손에 땀이 나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4시간을 버텨야 수술 한 건을 마칠 수 있다. 그건 누구나 감당하기 버거운 스트레스다. 의사가 수술을 잘 끝내면 환자는 수술 직후부터 회복세를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수술이 매끄럽지 못했을 땐 회복이 느리고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 모든 게 의사 책임은 아니겠지만, 어찌 됐든 칼을 든 사람은 의사다.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술장 안에서 의사들은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처럼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린다거나, 혼잣말한다거나,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까칠해진다거나... 모두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나름의 방법들이다. 그런데 교수님은 수술장 안에서 음악 소리 들리는 것도 거슬린다고 한다. 음악이 선생님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 ‘음악 좀 꺼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까칠할지... 상상이 간다. 임석병 교수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이중적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의대 시절 선배들이나 교수님을 보면서 외과 의사의 스트레스를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칼잡이가 되셨을까?

그 이유는, 의대생 시절 선생님의 눈에 대장암 환자들이 제일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암환자들은 수술이 끝나면 가슴에 수술 자국만 남는다. 가슴을 도려내는 유방암 환자도 옷을 입으면 문제가 없다. 필요하다면 재건수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의 대장암 환자들은 다르다. 평생 인공항문을 달고 생활해야 하며 배변 문제 때문에 사회생활을 극도로 어려워한다. ‘수술 잘 됐습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인공항문 때문에 쉽게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대장암 환자들이다. 교수님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하셨다고 한다.


대장암, 그중에서도 항문에 가까운 직장암의 항문보존율은 최근 10여 년 동안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의대생 시절, 교과서엔 ‘암의 위치가 항문에서 최소 7cm는 떨어져 있어야 항문을
절제하지 않고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균 3cm, 경우에 따라서는 2cm 거리에 있는 상황에서도 항문을
보존하면서도 암을 도려낼 수 있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의술이 발전했고 그에 맞춰 교수님도 끊임없이 칼 솜씨를 연마한 덕분이다.

즉, 교수님은 칼잡이가 맞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나 칼잡이요.’라고 얼굴에 쓰고
다니는 그런 칼잡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강호의 고수인
그런 칼잡인가 보다.


교수님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 대상의 이름은 ‘문합부 누출’.

암을 제거하고 다시 연결한 부위가 딱 붙지 않았을 때 생기는 수술 합병증이다. 살성이 좋은 사람은 잘 붙고, 아니면 회복이 느린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개인차’라는 문제를 넘어서서 예방법과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자 목표다. 또한 대장암 환자들의 치료성적을 높여서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암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고민거리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때론 즐겁다. 좋은 동료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대장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수술을 담당하는 교수님을 포함해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 병리과, 마취과 등등 한둘이 아니다. 이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내는 방식이 통합진료다.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대장암’이라는 난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보람과 즐거움도 함께 있다. 환자는 최선의 진료를 받고, 의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교수님은 ‘통합진료’의 높은 성공률은 ‘공동 지성의 힘’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수술과 연구에 빠져 살다보니, 교수님은 ‘정말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도 못 읽었다’고 하신다. 그 책은 대학 시절에 읽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책을 읽고 둘째 아들 ‘이반’의 매력에 빠진 선생님은 이반처럼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하신다. 헌데 어느 날, 선배에게 책 이야기를 했더니, 선배는 ‘나이 들어서 책을 다시 읽으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과연 그럴까.’ 그 궁금증에 다시 책을 정독해보고 싶은데, 방대한 책을 다시 꺼내 들 시간이 나질 않는다는 교수님. 아마도 그 책을 다시 읽을 날은 은퇴식 다음 날이 아닐까? 칼잡이 임석병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교수님을 쉽게 놔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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