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만난 최창민 교수의 첫인상은 차갑다. 아마 이곳이
암 사망률 1위인 폐암과의 싸움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폐암이 의심되는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다.
폐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환자는 마지막을 떠올린다.
실제로 폐암은 5년 생존율이 20% 정도로 예후가 그리 좋은 암은
아니다. 그래서 진단된 순간 많은 환자가 절망하고 힘들어한다.
진료실로 들어오는 50대 후반의 남자. 폐암 3기 환자인 그에게
의사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는 환자에게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설명을 들려준다. 듣기에 좋은
이야기만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상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설명이 끝날 때쯤 이렇게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을 가장 하고 싶으세요?”
그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던 환자는 길지 않은 시간 고민을 한 뒤 대답한다.
“다음 달 딸 아이 결혼식에 꼭 가고 싶어요.”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리는 환자의 대답에 그가 응원을 보낸다.
“현재 표적 치료제도 나오고, 좋은 항암제도 많이 나왔어요.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는 그제야 눈꼬리가 살짝 처진 주치의의 선한 얼굴에 눈이 간다.
그는 요즘 두 가지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는 환자가 일상생활에서도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는 올해 초부터 호흡기 환자의 호흡 재활치료를 돕는 웨어러블 기기 개발과 폐암 환자들이 쉽게 항암 관리를 할 수 있게 디자인한
앱 개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의 의료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일을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최창민 교수는 의대 시절 매년 두 차례씩 서울대 의대ㆍ간호대 연합 봉사동아리 ‘송촌’의 멤버로 의료 취약지역을 찾아 진료 활동을
했다. 그들의 역할은 민간의학 등에 매달리면서 병을 키우고 있던 마을주민에게 예방보건교육 등을 제공하고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환자들을 보건소와 연계시켜 평소에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의대 재학중 3년간 그가 찾아간 곳은
충북 괴산의 한 마을이었다. 주민의 약 30%가 간암을 일으킬 수 있는 ‘간흡충(간디스토마)’에 감염되어 있었다. 대변 검사와 같은
간단한 검사로 환자를 가려내 약을 제공하고, 교육 등을 통해 생활 습관을 개선하며 주민들을 치료했다. 매년 두 차례씩 그곳을
찾아가 주민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3년 뒤, 놀랍게도 이 지역의 간흡충 감염률은 5%로 떨어졌다. 그는 그때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치료 계획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해결되는 문제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시적 안목에서 환자 치료계획을 세우고 지역 전체의 건강을
이끄는 일에 흥미를 느끼던 그는 전임강사를 마치고 국군수도병원에서 군의관 생활을 시작했다.
군병원 최초로 선발한 ‘군 중견의’로서 전국을 순회하며 폐렴 및 결핵 감염관리를 위한 격리병동을 설계하는 등 행정 및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때의 경험은 이후 병원에서 호흡기내과 PI 담당 교수로 의료의 질을 높이는 일과
단기 병동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그는 <고맙습니다> <종합병원2> <응급남녀> 등의 의학드라마 자문역을 맡아 질환이나 병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
“대중매체를 이용하면 더 많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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