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방사능 그 두려움을 안전으로 답하다 2018.01.15

방사능 그 두려움을 안전으로 답하다 - 핵의학과 이종진 교수

 

북적이는 병원 안, 정중동의 공간이 하나 있다. 핵의학과 판독실이다. 책상마다 3~4대의 모니터가 가득하고
그 안엔 누군가의 뼈와 뇌, 심장 등의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치열하고 진지한 공기 속 파티션 너머에 핵의학과 이종진 교수가 보였다.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몸속 깊이
생화학적 변화를 추적하며 가장 먼저 병마를 마주하는 그의 머릿속은 누구보다 분주한 듯했다.


오늘도 나의 길을 묻다

핵의학과에서 종양계 영상 판독과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이종진 교수는 에너지 공학과 출신이던 부친 덕분에 비교적
새로운 분야였던 핵의학과에 자연스럽게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하지만 빠른 선택이었던 만큼 후회도 빠르게 다가왔다. 의학뿐 아니라 생화학, 공학, 물리학, 수학 등을 모두 다루는 융합학문이다 보니
공부할 것도 많고, 책을 펼치면 의사가 아니라 엔지니어라도 된 기분이었다. 생소한 분야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들기도 했다.
지금도 매일 자문해보곤 한다. 이 길이 과연 내 길이 맞는지. 그때마다 질문에 대한 답보단 풀고 싶은 숙제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병리 기전에 맞는 새로운 종양추적자를 발견하고, 방사성 핵종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법을 구축하는 것 말이다.

끊임없는 호기심 덕분에 의사로는 드물게 새로운 아미노산 종양 추적자를 직접 디자인하여 AMC 시리즈로 이름을 붙이고 우리 병원
핵의학과 오승준 교수와 이상주 특수전문학자의 도움으로 합성에 성공, 동물 모델에서 종양에 섭취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치료보다 안심이 먼저

 

“잠잘 때 그 인형 꼭 껴안고 자지? 안고 있어도 좋아!”
이종진 교수의 한마디에 무거웠던 입원실 안이 잠시 따뜻해진다.
작은 소통은 환자와 보호자가 웃음 짓는 찰나를 선물한다. 그도 역시
의사 이전에 두 아이의 아빠다.
격리 치료가 원칙인 방사선 동위 원소 치료 환자는 혼자 입원하는데,
부득이하게 소아 환자의 경우엔 보호자가 같이 입원한다.
무거운 납가운을 24시간 동안 입고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을 볼 때면
새삼 깊은 모성애에 공감하며 소아 환자에 좀 더 신경 쓰게 된다.

지난해에는 소아 환자 엄마들의 소변을 입원 기간 동안 직접 수거하고
계측하여 내부피폭량을 구했다. 내부 피폭량이 미량에 불과해 내심
불안한 마음을 숨겨온 엄마들을 안심시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실 이 교수를 처음 만나는 환자들의 표정은 대부분 어둡다.

방사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의료진까지 방사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드러낼 땐 못내 서운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피폭되는 방사선은 미량에 불과해요. 일반적인 진단 과정이라면 사고가 나기도 힘들고요. 미지에서 온 두려움과 같아서 설명과
설득으로 100% 안심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이 교수의 최대 관심사는 늘 방사선안전이다. 본업과는 별개로 3개월을 꼬박 매달려 방사선 취급 감독자 면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핵의학과 류진숙 교수가 초석을 다져놓은 MIBG 약물 치료의 프로토콜은 이미 그의 손에서 많은 수정을 거쳤으며, 매일 아침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세팅을 직접 확인한다. 환자에게 안전을 설득하기까지는 120%의 자신감과 함께 책임감이 숨겨져 있었다.


내일을 위해 달리는 오늘

이 교수는 강추위에도 자전거에 오른다. 2012년부터 8km 거리의 자전거 출퇴근을 쉬는 법이 없다. 부지런히 달리다 보면 체력관리는
기본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간 반복 업무도 차근히 곱씹어 보면 더 효율적인 작업환경을 구축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다 GFR(사구체여과율)을 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게 됐고 지금은 병원 업무에 사용 중이다.
혹시 여유로운 스케줄의 산물일까? 천만의 말씀이란다.

“판독 건수도 워낙 많고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정작 환자와 나눌 에너지는 남지 않아요. 번아웃 되는 의사도 많이 봤죠.
저는 롱런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아이러니하지만 좀 더 부지런히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아 나서야 하죠.”


인생의 큰 기로에 서 있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연구, 진단, 치료에 대해서만큼은 신뢰를 주고 싶다는 이종진 교수.
“의학 드라마 속의 멋진 수술실 의사와는 많이 다르죠?”
머쓱하게 웃는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늘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이종진 교수의
하루하루가 쌓여 신뢰의 초석이 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의학 드라마가 미처 다룰 수 없는 감동은 바로 이 지점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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