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골든타임에 만나는 삶과 희망 2018.03.13

골든타임에 만나는 삶과 희망 - 응급의학과 손창환 교수

 

“교수님 때문에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 잠시 정지 버튼이 눌린 듯했다. 모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가 손창환 교수에게 건넨 한마디였다.
“의사는 누군가를 살리는 일을 한다고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환자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줄 수도 있겠구나!
그때 진짜 제 역할을 자각하게 됐습니다.”
의사의 역할은 뭘까. 너무 익숙해서 잘 떠오르지 않는 질문이다. 응급의학과 손창환 교수가 찾은 답이 궁금했다.


아버지의 유산

“난 꼭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할 거야.”

손 교수가 대구에서 공부하던 의대생 시절,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다. 당시에도 간이식 수술은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최고였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의 오랜 간질환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집보다 병원이
더 익숙했다. 자연스럽게 직업으로 의사를 꿈꾸게 됐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의대 진학은 욕심이었다. 장남의 책임감을 이유로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액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고,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상황이 힘드니까 생각한 대로 꼭 이뤄야 했죠. 진짜 간절하면 다 되더라고요.”

그는 계획대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아버지도 서울로 모시고 왔다. 하지만 전공의 기간 중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입원비 한 푼이 급한 시기에 하고 싶은 일 하라며 아들의 기나긴 의대 공부를 기다려 주고, 늘 도움이 못 돼 미안하다던 아버지였는데…
허망하고 안타까웠다. 사실 손 교수에게 병원은 익숙한 공간이지만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의사는 늘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고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날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보호자일 때 늘 그런 의사를 만나고 싶었죠. 환자가 어떻게 마련한 치료비인지, 그 가족이
어떤 마음으로 의사를 만나는지 직접 경험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의사와 환자는 한 팀 같은 협력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사무적으로 대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의료진에게 감시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거든요.”


그는 환자를 만나면 따뜻한 말로 서로의 장벽부터 허문다. 필요할 땐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의 아버지가
소환된다. 그를 의사로 만든 것도, 더 좋은 의사가 되도록 돕는 것도 아버지다.


중독 너머를 지키다

 

손 교수는 인턴 시절 응급실에 매료됐다. 의사의 빠른 치료 결정이 환자에게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응급의학과의 치료방식은 빠른 선택과 집중을
좋아하는 손 교수의 성향과 잘 맞았다. 현재 그의 주 연구분야는 임상독성학으로
일산화탄소 중독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신경과 전상범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는 최근 학술지 「자마 뉴롤로지」에 게재됐다.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후 초기에 회복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에서 보이는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그에 대한 치료 방법은 없다. 그래서 시작된 연구는
급성 일산화탄소 중독 초기에 MRI 촬영으로 후유증 발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급성 일산화탄소 중독의 경우 기존 연구로는 임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우리 병원은 고압산소실 뿐만 아니라 중독 환자를
전문적으로 다룰 시스템을 갖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유리한 여건이죠.”

 

풀어나갈 과제가 아직 많다는 손 교수. 그가 느끼는 책임감도 크다. 앞으로 지연성 신경학적 후유증을 예방할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다기관 전향적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삶을 이끄는 의사를 꿈꾸다

급성중독환자 중 상당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들이다. 가난에 지쳐서, 우울해서, 자식에게 피해만 줄까 봐…
환자들의 크고 작은 사연들을 듣게 된다. 어떤 사연이든 ‘누군가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회복이 시작된다.

“혼자 고민하다가 나쁜 선택을 하게 되죠. 의학적 처치도 중요하지만 또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도 치료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가족에게도 환자가 괜찮을 거라고 예단하지 말고 늘 환자의 생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합니다.”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며 손 교수와 환자는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반복적인 자살시도 환자들은 손 교수의 노력으로
부족한 경우도 많다. 그들에겐 일회성 치료보다 사회적 관심과 관리 시스템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환자가 의식을 되찾으면 그는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권하며 협진을 의뢰한다. 그리곤 장난스레, 하지만 진심을 담아 말한다.

“다음에 또 응급실에 오시면 입원 안 시켜줄 겁니다. 여기서 나가시면 행복하게 사십시오!”


골든타임, 생사를 가르는 짧은 시간이다. 응급실에서의 삶은 곧 다시 시작될 희망을 뜻한다.
그래서 손창환 교수에게 골든타임은 희망을 만나는 시간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로 인해 삶을, 희망을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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