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보이지 않는 씨앗을 뿌리며 2021.02.15

보이지 않는 씨앗을 뿌리며 - 안과 이훈 교수

 

어릴 적 기억 하나. 아버지와 남동생과의 저녁 식사 자리였다.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부재를 처음 인식한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앓는 병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픈 어머니를 도울 방법을 늘 염두에 두게 되었다. 덕분에 자립적으로 성장했고 기숙사 고등학교를 거쳐
의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본 격적으로 환자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 나섰다.
 

환자가 이끈 동기부여

안과 전공의 때였다. 백내장 치료를 미루다가 시력을 잃고 수술 결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환자를 만났다. 노화 현상으로만 여기다 화를
부른 것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수술을 받고 일주일 후. 극적으로 광명을 찾은 환자의 밝은 표정은 이훈 교수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만큼 보람찬 일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백내장 수술이나 각막이식 수술을 통해 누군가 앞을 볼 수 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거든요.
세부 전공을 각막 및 백내장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안부로 정한 이유입니다.”


실제 이 교수의 진료실은 웃음과 눈물이 끊이질 않는다. “이제 방바닥의 먼지가 다 보여요. 청소하느라 바빠졌다니깐~.” 백내장 수술
환자가 보는 기쁨을 생생하게 전했다. 심각한 감염성 공막염을 앓던 환자는 덕분에 안구 적출 위기에서 벗어났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생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더라도 환자가 느끼는 불안은 커요. 익숙한 감각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저만 믿고 제주에서, 목포에서
오시는 환자에 대한 예의가 무엇일지 항상 고민합니다.”


그래서 보통 전공의 및 전임의가 하는 치료 과정까지 직접 하고 있다. ‘안내문의 설명대로 눈꺼풀을 닦으면 됩니다’라는 말과 직접
닦아주는 행동의 차이는 매우 컸다. 막간을 이용해 설명과 일상 대화를 곁들이면 환자들은 한결 안심하고 귀가했다.
 

진지하고 겸손하게

 

해열제를 잘못 먹고 피부 전신에 염증이 생긴 스티븐슨존슨 증후군 환자가
찾아왔다. 이전 병원에서 받은 각막이식 수술의 예후가 좋지 않았다. 각막은
터지기 직전 상태이고 검은자와 흰자 사이에 위치한 윤부도 망가져 있었다.
고민 끝에 전신 마취 후 전층 각막이식 수술과 윤부 이식술을 한 번에 진행했다.
정상 수준까지 기대할 순 없지만 환자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이 교수는 기쁜
마음으로 회복을 알리는 동시에 당부를 곁들였다.

“혹시라도 이식 후 거부반응이 오면 얼른 병원으로 오셔야 해요.” 간혹 수술을
잘 마치고도 뒤늦게 알 수 없는 거부반응이 일어날 때가 있다. 작은 가능성에도
조심하며 늘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이유다. 환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찾아왔을지, 어떻게 치료비를 마련했을지 따져볼수록 이 교수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먼 길을 오셨거나 연로한 환자분들이 많아요. 그분들께 이식
거부반응과 재이식 수술을 이야기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교수가 더욱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있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각막이식은 국내 기증 각막의 40~50배 비용이 드는 수입 각막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기증 각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기증을 늘리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계획입니다.
차흥원, 김재용 교수님과 인공 각막도 연구 중입니다.”

 

 

끊임없는 시도에서 가능성을 보다

이 교수는 최근 병원 공식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안과 질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개인적으로도 매주 치료 영상을 올리고 있다.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과 의대생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서다. 누구나 쉽게 찾아보고 참고할 수 있어 어느덧 구독자 2,200여 명,
전체 조회수 360만에 이른다.

“서로 묻고 배우는 환경과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결국 환자의 회복이라는 목표는 같으니까요. 공유가 때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연결되어 뜻밖의 가능성을 시도해 볼 수 있죠.”

그래서 이 교수는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하며 실행에 옮긴다. 얼마 전 빅데이터연구센터에서 주최한 의료정보 분석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 환자들에겐 직접 만든 QR코드를 알려주며 정보를 손쉽게 주고받고 있다.
현재 눈 안쪽의 문제가 있는 곳만 벗겨낸 후 원하는 위치에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이식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 융합의학과 황창모 교수, 강원대 공대와 함께 자기장을 이용한 10마이크로미터, 즉 1m의 백만분의 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인공각막 및 자기장을 이용한 각막이식 등을 통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임상 연구를 꾸준히 하고
싶어요. 모든 환자에게 눈이 편안해졌다는 말, 이제 앞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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