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마지막 걸음의 파트너 2021.03.22

마지막 걸음의 파트너 - 종양내과 서세영 교수

 

어릴 적 마을에는 의원이 하나뿐이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아프면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의사가 되면 자기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구나!’ 그렇게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종양내과에서 도움이 절실한
암환자들을 돌보는 일상은 만족스러웠다. 치료가 어려울 것 같던 암환자가 신약 임상연구에 참여해 좋은 치료
반응을 얻는 기쁨도 찾아왔다. 호전되지 않는 환자에게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서세영 교수는
완화 의료에 주목했다.
 

내게 더 많은 경험이 있었다면

레지던트 1년 차 때다. 한 폐암 환자에게 연명의료 유보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숨이 차고 폐가 안 좋긴 하지만
의식이 명료한 환자를 보니 망설여졌다. ‘이분이 정말 곧 돌아가실까?’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내용을 보호자에게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간 혼자 끙끙댔다. 그제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가까이서 겪은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죽음에 대한 교육과 지지 시스템을 만들어야지!’

다짐한 계획들을 차차 실행에 옮겼다. 의과대학에 죽음과 관련된 교육을 개설하는 데 동참했다. 의사가 되기 전에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인생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본다면 의료 현장에서 겪을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암 치료와 함께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포괄적으로 살피는 완화 의료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긴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을 보게 됐어요. 쉽게 도움을 청할 창구가 필요해 보였고 그게 완화 의료였습니다.
종양내과에서 항암치료와 병행해 기본적인 완화 의료를 시행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발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병원에서도 관심을 보였고요. 2017년에 간호사, 사회복지사와 함께 완화의료팀을
출범했습니다.”

 

조금 불편한 질문

 

진료실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은 완화의료팀에서 보완했다. 환자에게 맞춘
포괄적인 돌봄 계획을 세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가정간호사, 약사, 영양사 등과
협업하고 사회자원을 연결했다.

“환자 입장에선 암이 나빠진 이후의 계획까지 세우는 제가 냉정하게 느껴지실
거예요. 그런데 환자분들은 병원을 나가는 순간부터 당장 뭘 먹어야 하는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당황의 연속이거든요. 그래서 완화의료팀이
지지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40대 후반의 암환자가 항암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미 폐와 심장에 물이 차
괴로움을 토로했다. 항암치료 중단을 결정하자 환자는 무척 불안해했다. ‘현실을
함께 고민해 볼까요?’라며 서 교수는 환자 본인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먼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질병과 인생의 균형을 찾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환자는 차차 수긍했다. 완화의료팀의
도움을 받은 환자는 항암치료를 중단한 후 예상보다 오래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삶을 마무리했다. 조금 더 일찍 이 프로그램을 알았으면 좋았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암환자분들은 대개 암이 많이 줄었는지, 크기가 얼마인지 가장 궁금해하세요. 암 치료에만 매진하며 병의 호전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
버리죠. 본인의 삶을 지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기가 참 쉽지 않아요. 그래도 준비된 이별을 하고 난 뒤 환자 가족이 찾아와 감사와
안부를 전할 때면 잘 치료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환자의 삶을 들여다보며

환자 삶의 질을 어떻게 진료실에서 파악할 수 있을까. 진료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환자가
평소에 경험하는 증상을 표시할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진료에 효과적으로 반영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또 스마트밴드와 슈즈를 이용해
암환자의 치료 적응도와 합병증을 모니터링하며 맞춤형 영양관리, 운동 프로그램을 반영한 진료 모델을 개발 중이다. 완화의료팀은
병동의 임종 환경을 개선하고 보호자를 위한 임종 키트도 제작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도와드리는 동반자가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환자들의 싸늘한 반응에 ‘왜 내 뜻을 몰라줄까’라며 상처
입던 저도 점점 환자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애초에 고민도, 좌절도 없었을 것이다. 때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더딘 성취를 기다리면서 어릴 적
꿈을 소환한다.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의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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