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오늘만 잘하자 2018.07.17

오늘만 잘하자 - 위장관외과 김범수 교수

 

“스물다섯에 의대에 입학했어요. 학업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수련받을 병원을 찾는데 서울아산병원만 저에게
기회를 줬죠. 남들보다 시작이 늦고, 특별한 사명감도 없이 시작한 의사였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기복 없이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위장관외과 김범수 교수는 첫 소개부터 돌려 얘기하거나 포장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만남이었다.


늦깎이 수험생의 선택

그는 소위 서울의 좋은 대학교 입성에 실패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연이은 낙방에 부랴부랴 입대 후 다시 책상에 앉았을때가 스물넷.
뒤늦게 대학 간판보단 미래가 확실한 전공을 고민할 무렵, 인기 드라마 ‘종합병원’에 푹 빠졌다. 멋진 의사들의 세계가 그를 잡아당겼다.
그 다음해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에선 되도록 빨리 개업할 수 있는 과부터 찾았다. 늘 ‘남보다 늦은 나이’라는
불안함이 현실적인 선택을 서두르게 했다. 그래서 선택한 내과였지만 통 안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

인턴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심기일전하여 서울 대형병원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지방대 출신에 많은 나이가 걸림돌이었는지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차차 서울행을 단념할 때쯤 서울아산병원에서 합격 통보가 왔다.

“출근해보니 선·후배 관계도 유연하고, 다양한 지역과 대학에서 모인 사람들의 합이 좋았어요. 나를 뽑았을 때부터 서울아산병원의
진가는 진작 알아봤죠. 하하.”


일단 해보고 안 맞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며 선택한 외과에선 매일 새로운 수술이 그를 기다렸고, 수술실과 진료실을 오가며
역동성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당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던 복강경수술을 할 수 있고 비만대사수술을 막 시작하던
위장관외과를 선택했다. 애초에 걱정했던 나이는 병원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의사

 

언젠가 30대 여성 환자의 부모가 그를 찾아왔다. 눈물로 딸의 수술을 간청했다.
10여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딸은 사고 이후 위에 삽입한 관으로만 음식물을
주입해왔다고 했다. 겨우 입으로 음식을 삼키기 시작하자 관을 삽입했던 부위에서
음식물이 샜다. 하지만 딸의 위 구멍을 막아주겠다는 병원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서울아산병원이었다. 누워만 있는 환자라서 마취위험도가
높고 여러 합병증이 예상됐지만 김 교수는 수술을 망설이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김 교수도 환자가
마지막으로 내민 손을 잡아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위누공봉합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우리가 신이라도 만난 거 같네요!” 환자 부모는 벅찬 감격에 젖었다.
포기밖에 남지 않았을 때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나타난 해결사였다.

 

 

“제가 서울아산병원에 남아 교수를 할 것인지 고민할 때 스스로 던진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나를 찾아온 모든 환자를 책임질
수있는가? 교수라면 실력과 책임감이 우선이죠. 그때 제 답은 이랬습니다. ‘특출난 명의는 못 돼도, 어떤 환자도 가리지 않고 치료할
자신은 있다.’ 저를 믿고 찾아온 환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때의 다짐은 아직 잘 지키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위에 삽입한 관으로만 음식을 섭취해온 환자도, 여러 병원에서 반복된 비만대사수술 후 합병증이 겹쳐 장이 모두 엉겨 붙은
환자도 김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일상을 되찾았다.

“10여 년 차근차근 배우고 치료하다 보니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의사의 의지 문제죠. 만약 처음부터 제가
서울아산병원 교수를 목표로 달려왔다면 좌절도, 후회도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오늘만 잘하자는 다분히 직업적인 각오로
달렸어요. 기대치가 작았는지 일이 늘 재미있고 직업 만족도도 점점 올라가더라고요.”

 

성공을 묻지 마세요

비만대사수술은 고도 비만과 그에 따른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해 위의 크기를 제한하거나 위에서 소장으로 우회로를 만드는
수술법이다. 요즘 그는 비만대사수술에 대한 고민이 많다. 고도 비만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꼽히지만 환자들의 부담과
편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고도 비만은 당뇨, 고혈압, 관절염, 그리고 우울증으로 쉽게 번져요. 분명 치료해야 할 질병이죠. 그런데 비만 환자들은 질병을 자꾸
숨기려고 해요. 비만대사수술을 가족 몰래 하려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비만 환자들에게 다가가 치료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문턱을 낮춰주려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어쩐지 그가 그리는 성공의 밑그림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것 같다고 물었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에게 성공을 물으면 안 돼요. 그저 자기 일에 만족하면 성공한 겁니다. 의무감만으론 환자가 귀찮고, 성공 가도를 욕심내면
환자가 수단이 돼버리거든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나를 쭉 지켜봐 온 병원 직원들이 나 김범수를 믿고 치료를 맡기는 게 의사로서
최고 명예죠.”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야기가 가득했던 인터뷰 내내 그는 재빠르고 능숙한 선수라기보단 골인 지점을 정확히
아는 성실한 선수같았다. 때로 걸음이 조금 느릴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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