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의 말에 마음을 기울이다 2016.11.01

환자의 말에 마음을 기울이다 -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

 

삐이~ 왼쪽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눈을 떴다. ‘스트레스 때문인가.’
시간이 지나도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진단 결과 돌발성 난청이었다.
5년 전 같은 병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었다. ‘정신과 의사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어느 날 갑자기 의사는 환자가 되었다.


치매 연구의 큰 그림을 그리다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의 어린 시절 꿈은 만화가였다.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그에게 어머니는 “만화가는 그림만 잘 그린다고
되는게 아니라 생각이 독특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그에게 의사가 되길 권했다. 어머니의 말에 설득돼 의대에 진학했다.
인턴 시절 환자를 치료하는 기쁨을 알게 돼 임상의사가 되기로 했다. 못 이룬 꿈 때문이었을까? 인문학과 과학이 교차하는 정신의학을
전공으로 정하고,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매에 대한 연구가 막 시작되던 때였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던
노인 정신과 진료를 네 번 열어야 할 만큼 환자 수가 늘어났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이나 인지 장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망상, 환각, 불안증, 불면증 등도 치매의 그림자였다. 그는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데에만 매달리는 대신 치매를 극복할 사회적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조기 치매 발견을 위한 총체적 안전망을 설계하는데 집중했다.

2007년부터 서울시와 진행한 치매지원센터 사업에서 송파구 치매지원센터장을 맡아 치매의 조기검진과 예방, 관리 시스템 마련에
앞장섰다. 동시에 울산의과대학 교무부학장과 서울아산병원 임상연구보호센터 소장 등 학교와 병원 내 중책을 맡으며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였다. 2012년에는 치매 정복을 위한 한국형 알츠하이머 치매 뇌영상 선도 연구 사업(K-ADNI)이 국책과제로 선정되었다.
국내 연구 환경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중단되었지만 조만간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치매는 진행이 느린 질환입니다. 새로 개발된 진단 기법과 신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려면 수천 명의 대상자, 수년간의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요. MRI, PET, 생물학적 표지자 등 정교한 임상자료와 연구자료를 익명화시키고 온라인상에 공개해
연구자들이 원하면 누구나 내려받아 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ADNI 사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치매를 정복하기
위해 느리더라도 연구가 가야 할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되어보니 보이는 것들

 

한 손엔 진료 기록을, 다른 한 손엔 연구 자료를 들고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니던 지난해 10월 왼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발생했다.
5년 전 돌발성 난청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은 그였다.
2개월간의 약물치료에도 큰 차도가 없어 결국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았다. 청력을 담당하는 1만여 개 이상의 청각신경 세포 대신
22개의 전극을 가진 기계가 귓속으로 삽입됐다. 하지만 곧바로 귀가
트이는 것은 아니었다. 몇 달간 청력 재활 훈련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료활동이 가능할 정도의 청력을 회복했다.
5개월 만에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다. 2~3개월에 한 번씩 만나
진료하던 환자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눈물 어린 눈망울로
안부를 물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요즘 환자의 초기 진료기록을 검토하고 검사 결과를 찬찬히
읽어보고 있다. 지금까지 듣지 못한 혹은 놓친 환자의 아픔을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쉬면서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책에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앎과 아름다움의 어원이 같다’고요.
환자 한 분 한 분의 인생사와 증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될수록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요.”


환자였던 모습을 떠올리며 의사로 돌아가다

진료실 안의 김성윤 교수는 환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의사다. 응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환자가 되어보니 관심과 애정도 큰 약이었다.
대기 시간의 무료함, 검사 일정에 맞춰 몇 차례씩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
환자 경험은 환자 중심의 병원과 진료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소리를 찾아준 의료기기를 발명한
누군가가 정말 고마웠다. 자신도 연구를 통해 치매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고 싶었다.

‘귀가 잘 들리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그는 질문을 바꾸었다. ‘만일 청력이 온전해진다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어린 시절 그는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의대에 가서도 그림그리기에 심취했다. 의사가 되어서도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용 웹툰을 구상할 만큼 그의 가슴속에서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흐르고 있었다. 붓을 잡는 일은 청력 장애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환자에게 “지금의 고통이 해결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조언한다.
“증상을 없애는 것만 치료가 아니랍니다. 증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더 큰 치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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