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세 통의 편지: 신장이식 모녀와 신성 교수 스토리 2024.03.21

세 통의 편지 - 신장이식 스토리 이미지

 

장기이식은 크고 작은 절망을 견딘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이 전해지는 과정이다. 그 속에는 인내와 용기, 위로와 다짐이 필요했던 저마다의 사연이 숨어있다. 무사히 신장을 이식받은 엄마와 기증한 딸, 집도의가 서로에게 보낸 편지를 전해왔다.

 

차라리 내가 네게 기증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딸에게

네가 엄마에게 신장을 기증해 준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어. 일단 엄마는 아주 무사하단다! 처음에 네가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했을 때 차라리 내가 너에게 기증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어. 수술 당일까지 ‘꼭 이식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지. 지금은 매 순간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 너를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저려 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두 번째 인생은 딸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

잘 살아내야지.

천 번 만 번 불러도 여전히 애틋한 우리 딸, 엄마는 이 말밖엔 할 수 없구나. 사랑해. 사랑해.

 

내게 두 개 있는 신장이라 감사해요

내 사랑 홍 여사에게

가끔 엄마에게 편지를 써왔지만 이번 편지는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017년 10월 10일 미국 애리조나의 황혼 녘에 전화를 받았어요. 엄마가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고 언젠가 신장이식이 필요할 거라는. 순간 그 ‘언젠가’가 오면 당연히 제가 기증자가 되리라 결심했어요. 그리고 2020년 5월 14일. “언니, 빨리 집에 와.” 울먹이며 전화한 동생의 목소리에서 그 ‘언젠가’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한국에 돌아갈 생각도 하지 못했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지만 부랴부랴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어요. 캐리어 하나 달랑 끌고 집으로 향하는 30여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2주간의 격리와 수십 가지 기증자 검사, 그리고 엄마를 설득하느라 정신없이 두 달을 보냈네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감이 교차했어요. ‘내 꿈만을 위해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게 맞는 걸까?’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 돌아오면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술 준비와 휴직 처리 등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그런데 수술 예정일 3주 전쯤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어요. 수술을 맡았던 병원에서 수술이 어렵다는 내용이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자식의 배를 가르면서까지 살고 싶은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주어진 만큼만 살다 가겠다는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설득했는데 정작 수술이 불가능하다니….

 

엄마를 미국으로 데려올 궁리까지 하던 중에 서울아산병원의 로봇 수술이면 신장이식이 가능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하늘에서 주신 선물처럼요. 그때 제 기분을 엄마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간절한 마음을 안고 한국에 돌아와 수술을 진행했어요. 이전 병원에서 불가능한 수술이라고 했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엄마는 제 수술 자국을 볼 때마다 마음 아파하고, 조금만 불편해해도 미안해하시지만 저는 수술한 이후에 매일 감사하며 살아요. 엄마에게 필요한 게 심장이나 뇌가 아니라 제게 두 개 있는 신장이어서 나눠줄 수 있었으니까요. 짧으면 6개월 남았다던 엄마의 삶이 10년, 20년으로 연장되어 제 곁에 오래 계실 수 있다는 사실도 감사해요. 힘든 수술을 기꺼이 해주신 신성 교수님과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을 만난 것도 우리에게 다시 없을 행운이었네요. 이제 제 몸의 일부를 품고 있으니 열심히 건강 관리하면서 우리 행복하게 지내요. 미국에 놀러 와서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봐주세요. 잔소리도 좋아요. 엄마가 해주신 밥이 너무 먹고 싶어요.

 

힘든 과정을 잘 견뎌준 엄마, 언제나 유일한 나의 편, 나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저 역시 회복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이식 기증자와 수혜자로 만난 모녀분께

안녕하세요? 수술을 맡았던 신성 교수입니다. 시간은 조금 흘렀지만 환자분을 외래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납니다. 고도 비만으로 다른 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이 매우 위험하다는 소견을 듣고 오셨죠. 수술이 가능한지 물으면서도 이미 포기할 결심을 한 듯 담담한 표정이었습니다. 신장을 기증하기로 한 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마음이 읽혀서 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럴수록 어떻게든 치료해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개복을 통한 신장 이식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최소화하는 로봇 수술을 제안했고 환자와 따님은 수술에 동의해 주셨죠. 고도 비만 환자에게 국내 최초로 시행하는 로봇 신장이식이었습니다. 수술을 철저히 준비했지만 저로서도 걱정이 없진 않았습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하는 환자를 보며 무척 기뻤습니다. 어머니께 신장을 기증하려고 기꺼이 먼 길을 달려온 따님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환자 가족과 감동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환자와 가족분들에게 언제나 삶의 희망과 감격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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