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입사해 135병동과 소아외과병동에서 근무했다. 환자 상담에 흥미와 보람을 느껴 유전상담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졸업 무렵인 2018년. 새로 출범하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시범 사업에 부서장의 권유로 지원했다.
그러나 10여 년의 간호 근무에서 담당 환자의 임종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점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했다.
“당시 강성한 교수님께 이 일을 왜 선택했는지 물어봤어요.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모든 고민이 해결된 듯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될 용기를 내보기로 한 거죠.”
감정에 솔직한 성격은 환아와 가족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진심을 나누는 데 강점이 됐다. 허허벌판에 벽돌을 하나씩 쌓는 마음으로 시작해 꾸준히 배우고 경험을 쌓으면서 어느덧 완화의료 5년 차에 접어들었다.
‘햇살나무’는 만 24세 이하 중증질환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강성한 부교수, 이은옥 과장, 황지윤 사회복지사로 구성되어 진료과에서 의뢰 받은 70~80명의 환아를 만나고 있다. 매일 아침 면담을 앞둔 환아의 검사나 시술 일정, 통증 정도, 혈액검사 결과 등을 미리 전산으로 확인한다.
소아의 경우 질환과 발달단계, 연령이 다양해서 지식뿐 아니라 경험과 노하우가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진료과의 협진 목적에 따라 맞춤형 면담을 진행하며 필요한 자원을 연계하고, 심리적인 지지를 이어간다.
또래보다 신체적, 심리적 발달 속도가 느리거나 어려움을 겪는 환아를 파악해 재활의학·신경·정신건강의학과 등의 협진이나 미술심리, 놀이치료, 발레 등의 프로그램 배정을 돕는다. 이로써 환아들은 정서 발달이나 자기표현 방법을 익히고 자존감을 높여나갈 수 있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개념과 모델을 구축한 햇살나무는 환아 가족이 치료와 일상의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아이디어를 개발하며 서비스를 보다 확장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개한 저소득 가족 대상의 의료장비 지원사업도 그 일환이다.
“햇살나무의 도움을 받은 환아 부모님들 사이에선 ‘햇살나무가 햇살했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요. 재미있으면서도 들으면 힘이 돼요. 오늘도 햇살해야죠!”
환자 맞춤형 면담 외에도 보조금·후원금 운영,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 전반을 기획하는 등의 행정 업무가 많다. 지칠 때면 주저 없이 병동으로 향한다. “선생님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아이들의 투정 어린 환대가 늘 기다리는 곳이다.
업무 초창기, 병실 앞에 서면 긴장감에 한참 심호흡을 해야 했다. 지금도 아픈 자녀를 둔 가족과의 면담은 부담이 앞선다. 평소에 충분한 라포를 쌓아두면 임종기의 의사결정을 안전하고 편안한 방향으로 이끌기에 수월하다. 하지만 임종을 앞두고 급히 협진 의뢰를 받는 경우도 많다. 진심을 나누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 어깨가 무겁다.
“마음 아픈 상황에도 꿋꿋한 부모님들을 보면서 저희가 도울 일을 계속 찾아보게 돼요. 덕분에 일은 늘어만 가죠.(웃음)
언젠가 환아를 위한 동화책도 만들고 싶어요. 대부분의 부모님이 아이가 예후를 알면 치료를 포기할까 봐 자세한 설명을 꺼리세요.
대화로 다루기 어려운 의료적 상황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글과 그림으로 잘 설명하고 싶어요.”
햇살나무에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다시 만날 수 없는 환아도 늘어간다. 사별 가족에겐 때마다 편지를 보낸다.
인쇄물로 보낼지 고민해 보지만 애도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자 매번 펜을 든다. 좋은 기억은 되새기고 슬픔은 눈물로 털어내면 무겁던 마음이 옅어지면서 새로운 환아를 맞이할 여지가 생긴다. 슬픔을 눌러 담은 답장도 속속 도착한다. 어려운 시절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줘서, 우리 아이를 함께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사업 초반엔 완화의료를 거부하는 부모님이 많았어요. 점차 저희 역할이 알려지면서 이젠 먼저 찾아오세요. 그리고 치료 중인 아이와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거예요. 환아와 면담할 때면 일부러 부모님은 나가시도록 해요. 커피 한잔, 잠깐의 샤워로 마음을 환기할 여유가 절실한 분들이잖아요.”
환아들이 병원의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지만 인력과 재정 부분에서 늘 어려움이 따랐다. 그때마다 미술 치료사, 놀이치료사, 발레 강사가 먼저 햇살나무에 손을 내밀었다. 직원들은 지정 후원을 약정하고 접점 부서에선 아낌없는 도움과 응원을 더했다.
햇살나무 출신의 환자는 자원봉사자로 돌아오기도 했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에 좋은 기운이 따른다는 걸 늘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햇살나무는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제 영업 기밀 하나는 인사할 때 정확한 시간을 말하지 않는 거예요. 그때만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미안할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다시 올게~’라고 인사하죠.
반대로 초등학생이던 환아가 교복을 입고서, 유치원에 다니던 환아가 의젓해진 초등학생으로 저희를 찾아오기도 해요. 그 모습이 매번 울컥할 만큼 예쁘고 참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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