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이 많고 해부학적 구조가 복잡한 간은 절제할 때 상당한 출혈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개복이나 복강경 기구를 통한 절제가 주를 이뤄왔다.
김지훈 교수는 3차원 영상과 형광 조영 물질을 활용한 로봇 수술로 고난도 간암 수술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오늘의 고민은 항상 ‘어떻게 하면 더 간을 잘 절제할 수 있을까?’예요.
어제의 수술을 복기하고 내일의 수술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류를 줄여나가요. 그렇게 수술 수준을 높여가는 거죠.”
호기심과 열정의 결과들
김지훈 교수는 의학의 역사와 해부학을 파고들면서 고난도 간암 로봇 수술의 힌트를 얻었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간 치료 분야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게 많은 만큼 발견의 재미가 컸다.
“교과서를 싹 외우고 휴가지에서도 책을 놓지 않을 만큼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호기심과 열정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죠.”
2D 이미지를 수백 장 그려가며 3D 입체 영상을 재현해 간을 보다 정밀하게 파악했다. 인도시아닌그린(ICG) 형광 물질을 이용해 절제 부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자 출혈 없는 절제가 가능했다.
“전립선암이나 직장암, 신장암 등 여러 암종에선 로봇 수술이 이미 보편화돼 있어요. 그러나 간은 여전히 개복 수술이 주를 이루죠. 간의 위치 관계를 파악해 환자마다 맞춤형 절제를 시도하는 데 해부학적 구조를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여전히 밝히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지름 1cm의 구멍 4개에 로봇 팔을 넣어 간을 절제하고 치골 상부의 5~8cm 절개창으로 빼낸다. 이때 손 떨림이 보정되고 수술 화면을 10배 확대할 수 있어 혈관이 손상될 위험을 낮춘다. 환자들에겐 상처와 통증, 출혈을 최소화하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수술 당일 오후면 가벼운 활동이 가능해서 환자 만족도가 높아요. 제 입장에선 나이가 들수록 수술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듭니다. 로봇은 계속 발전할 테고 수술은 손이 아닌 머리로 하게 될 테니까요.”
사명감이 없이는
어릴 적 선교에 대한 꿈은 의료계에 몸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의료를 통해 환자를 섬기고 사랑을 베풀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 성장했다. 그래서 석사는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내과 공부도 놓지 않았다. 간이식·간담도외과를 선택한 것도 모든 수술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5년 전에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간 적 있어요. 외과 의사가 한 번도 온 적 없는 외딴섬이라 저를 많이 기다렸다고 해요. 탈장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있었거든요. 제 전공분야도 아니고 부족한 장비와 환경에서 수술하기란 많이 어려웠지만 절실한 환자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선물받은 경험이었습니다. 늘 좋은 장비와 환경, 전문가 동료들 속에서 ‘내가 잘해서’라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겸손하게 저의 쓰임을 생각할 수 있었죠.”
그는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국내외 간 외과 의사들에게 복강경·로봇 간 절제술을 전수하고 있다. 올해는 2번의 라이브 시연으로 독창적인 술기와 노하우를 전수했다.
“전 세계 외과 의사들과 지식을 나누며 다음 세대 외과 의사를 양성하고 싶어요. 간 외과의 미래를 만들어 가야죠.”
더 채워나가야 할 것들
혼인 전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으로 인한 간 전이를 발견한 환자를 만났다. 종양이 워낙 크고 대정맥을 누르고 있어 어떤 수술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많은 준비와 노력에도 수술 막바지에 출혈이 발생했다. 김 부교수에겐 로봇 수술 중 개복으로 이어진 단 2번의 경험 중 하나였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회진하며 환자를 돌봤어요. 수술 후 환자의 두려운 마음을 살피면서요. 다행히 환자는 재발 없이 건강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감과 위로는 김 교수가 가장 자신 없어 하는 영역이다. 그런 그에게 한 환자의 감사 편지는 큰 응원이 됐다. ‘교수님이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커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제 분야에 진심을 다하고 나로 인해 누군가 나아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에 오기 전, 새로운 팀을 꾸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 그러나 전 세계 표준을 만드는 선두 병원에서 간 절제술과 다음 세대 트레이닝에 힘을 보태고 싶은 바람도 분명했다.
“가장 안전하고 정확한 수술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 목표예요. 열심히 고민하며 여러 의료진과 완벽한 팀을 이뤄 결점이 없는 수술을 하고 싶고요. 후학을 위해 교육할 때, 환자가 잘 회복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외래에서 만날 때가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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