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가드닝: 정원 가꾸기 ① 정원을 가꾸는 데서 얻는 이익 2025.10.18

<이야기가 있는 산책> 병리과 김지훈 교수

 

(AI 활용 일러스트 ⓒ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최근 들어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은퇴 후 인생의 2막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기도 한다. 아마도 회색빛 도심 생활에 모두들 지쳐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혁명에서 출발한 도시화로 인해 일상생활은 편해졌지만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청정한 대자연이 얼마나 큰 이익을 주고 있었는지를 잘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주변 환경에서 채취한 시료로 미생물을 분석하는 학문을 메타제노믹스(metagenomics)라고 하는데, 그 연구들에 따르면 도심과 청정한 자연은 세균총이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청정한 자연환경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들은 그러한 환경 조건에서 인간에게 유해한 박테리아를 압도해 버리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각종 질병을 예방한다. 우리가 늘 마시는 물도 다 같은 물이 아니다. 수돗물은 유해한 박테리아의 밀도를 기준치 이하로 줄이고 염소로 활성을 일시적으로 눌러놨을 뿐이지만, 청정지역의 샘물은 유익한 박테리아로 가득 차있다. 물을 그릇에 떠 놓고 방치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수돗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끈한 물때가 생기고 뿌옇게 혼탁해지지만 샘물은 물때가 전혀 생기지 않고 맑은 상태를 유지한다. 이와 같이 청정한 자연은 사람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가까이하면 건강이 저절로 좋아지게 된다.

구태여 과학 지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청정한 자연에 노출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을 체험할 수 있다. 생명체는 자기 몸에 좋은 것들을 직감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민들이 주말만 되면 몇 시간의 교통 정체를 무릅쓰고서라도 산과 들로 향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청정한 자연을 내 집에 연출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잘 가꾼 정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 능력이 있다. 담석증으로 담낭 절제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실험군은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는 병실에서, 대조군은 도심의 주차장이 보이는 병실에서 수술 후 회복기를 보내게 했다. 여러 건강 지표의 회복 속도가 정원이 보이는 병실에 있던 환자들에서 두 배 가까이 빨랐다. 이처럼 잘 조성되고 관리된 정원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정원을 가꾸면서 얻는 또 다른 이익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며 생동하는 자연을 보고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날씨에 적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과거에 비해 건축 자재와 기법이 발전하고 냉난방에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실내 온도는 22℃~26℃의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야외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 그래서인지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하고 생활한다. 큰 맘먹고 나들이를 가야 자연의 모습을 잠깐 접할 수 있을 뿐이다. 바깥과 통해 있는 대청마루, 문종이 두 장으로 된 문, 그리고 나무와 흙으로 된 벽으로 늘 외부와 소통하며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과는 매우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과거에 비해 생활은 좀 편해졌겠지만 변화하는 날씨에 적응하는 능력이 쇠퇴하고 대자연과 교류할 기회를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옛사람들에 비해 면역력도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되어 암, 대사증후군, 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훨씬 큰 고통을 겪고 있다.

 

 

▲ 필자가 조성한 루프탑 정원의 모습. 왼쪽부터 봄, 여름, 겨울.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원이라도 가꿔보면 어떨까. 입춘 절기에는 아직 찬 공기 속에서도 길어진 낮, 높아진 남중고도 덕분에 매화의 꽃망울과 조팝나무의 새순을 볼 수 있고, 채송화와 나팔꽃이 피는 것을 보며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사진). 오염되지 않은 토양으로 만든 정원에서 농약 없이 식물을 관리하다 보면 우리가 어느새 잊고 지냈던 꿀벌, 무당벌레, 메뚜기, 땅강아지 등 반가운 손님도 만날 수 있다.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자연 학습의 기회를 선사하는 것이다. 퇴직 후 집에 머무는 분들에게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정원을 손질하며 건강하게 소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도심에는 옥상 바닥이 평평한 가옥이나 빌딩이 많다. 이 경우 여름철 천장으로부터 상당한 복사열이 옥상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경사지붕을 올려 천장과 지붕 사이의 삼각형 공간을 확보하지 않고 이런 슬래브 평지붕 구조를 채택한 경우 낮동안 달궈진 콘크리트의 열기가 바로 실내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럴 때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고 잔디로 피복을 해 놓으면 잔디가 태양에너지를 다 흡수하므로 여름 한낮에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창문을 닫아두면 실내가 오히려 더 시원한 신기한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옥상에 올라가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잔디를 구경하며 햇볕을 좀 쬔 뒤 실내로 내려오면 원두막 그늘로 들어온 것처럼 시원하니, 그야말로 여름이 기다려질 것이다.

 

반려동물 못지않게 반려식물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자연에서는 식물들이 동물들의 서식지가 되듯 인간 또한 식물에 의지해 살아간다. 아파트 빌딩 숲에 오래 적응하며 살다 보니 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잊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식물을 더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서는 반려식물, 특히 야외에서 직사광선을 받으며 서식하는 식물들을 키우는 몇 가지 팁을 소개하고자 한다.

 

※ 김지훈 교수는 2009년부터 병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화기 병리 판독 및 암유전체 진단을 전공하고 있다. 우리 병원 불자들의 모임인 법우회 회장으로서 병원 법당을 방문하는 환자, 보호자와 직원들의 행복과 성취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고 그 경험을 나누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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