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병동으로 온 20년 만의 연락 2026.03.12

‘간호의 온기’

외과간호2팀 봉설희 대리

 

(AI 활용 일러스트)

 

지난해 4월 어느 날이었다. 업무를 준비하던 중 한 간호사가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쪽지에는 환자의 등록번호와 이름, 보호자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환자 보호자인데 너무 고마운 마음에 꼭 연락을 하고 싶다며 병동으로 전화를 주셨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브닝 근무를 하는 내내 그 환자의 이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혹시 20여 년 전 그분일까. 어렴풋이 떠오르는 얼굴과 오래전 기억이 겹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용기를 내 쪽지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했다. 보호자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그동안 잘 지냈는지, 기억은 나는지 연이어 안부를 물으셨다. 다행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환자의 보호자가 맞았다. 반가운 마음에 약속을 잡고 며칠 뒤 만나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만난 보호자는 “여전히 그대로네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각자의 삶과 그때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오갔다.

 

“다른 병원에서 간암 오진이 있어 서울아산병원으로 오기까지 많이 늦어졌어요. 간호사님들과 주치의이신 김강모 교수님도 정말 애써주셨는데, 안타깝게도 두 달밖에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죠. 퇴직하고 이제 좀 재미있게 여행 다닐 수 있겠다 싶던 때였는데 너무 아쉬웠습니다.”

 

담담한 말 속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때 간호사님이 저희에게 너무 잘해주셔서 내내 기억에 남았어요. 장례식장에 와 주셨던 것도 정말 감사했고요.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병원에 다시 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췄던 보호자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내 왔어요. 다행히 아직 근무 중이셨네요.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 정말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간호의 온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갑작스러운 질병 앞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겪는 두려움과 상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함과 의지하고 싶은 마음….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은 의료진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보호자는 여러 차례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오히려 나는 간호의 본질과 따뜻함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보호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20년 만의 연락은 나에게 간호사로서 지녀야 할 초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치료를 돕는 것을 넘어 그들의 마음을 보듬는 일까지가 우리의 역할임을, 건네는 말 한마디와 눈빛 하나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이 만남을 통해 깨달았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