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며 희망 부서 1·2·3지망을 모두 분만장으로 적을 만큼 산과학에 대한 관심이 컸다. 당시 분만장에는 신규 간호사를 배정하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결원이 생기면서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분만장과 산부인과 외래를 각각 4년 경험한 뒤 2008년 태아치료센터에 합류했다. 누적된 산과 경험과 관심은 성장의 기회로 이어졌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고비도 많았다. 태아 수술이 고난도 업무인데다, 태아의 질환 및 초음파 내용은 생소하기만 했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기보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해외 학회에 교수님과 동행하며 많은 지식을 쌓았고 업무의 경계 없이 수준 높은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았죠. 그에 걸맞는 완벽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설명하기를 즐기는 성격 덕분에 불안해 하는 산모들을 격려하고 돕는 과정이 한결 수월했다. 태아치료센터에서 보낸 18년의 시간만큼 동료 의료진에게 나눌 경험과 노하우도 두둑하다.
태아치료센터는 문을 연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왔다. 단순 분만뿐 아니라 선천성 기형에 대한 출생 전·후 진단과 치료를 담당하면서 태아 이상, 다태아 등 고난도 케이스에 특화됐다. 박진희 차장은 서영화 과장, 김지현 대리와 함께 질환 상담과 진료 문의에 응대하고 센터 전반의 운영과 원무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태아 수술도 지원한다. 분만 건수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도 태아치료센터를 찾는 산모의 수는 오히려 늘어간다. 정밀초음파는 연 평균 4,500~5,000건에 이르고 태아내시경 327건, 션트 수술 703건 등을 시행하며 국내 최다 규모와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올해 신관 1층에서 6층으로 확장 이전해 더욱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산모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태아치료센터는 2010년부터 매년 핸즈온 중심의 워크숍을 열어왔다. 200여 명의 병원 내·외부 의료진이 참여해 관련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고 공유하는 장이다. 센터 의료진의 응축된 아이디어와 열의가 담겨 있기도 하다. 도전의 현장에 참여했다는 뿌듯함과 성과가 있어, 매일 숨이 차는 행보를 거듭해 나간다.
“분만장이나 산부인과 외래에서는 산모를 돌보는 게 우선인데, 태아치료센터에선 배 안의 태아가 살아있는지,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가 중요했어요. 영역이 완전히 달랐죠. 알아야 할 질환도 무궁무진해서 지금까지도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다행히 우리를 마음 졸이게 한 태아 한 명, 한 명이 건강히 태어날 때 힘든 건 싹 잊혀집니다.”
아침부터 전화 상담이 한창이다. 태아치료센터는 빠른 상담과 원활한 예약을 위해 전화번호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있다. 박진희 차장은 태아 질환과 상태를 듣고 응급 여부를 판단해 치료 가능한 교수님을 찾기 시작한다. 센터의 1차 스크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전 예약자는 15명. 박 차장은 각 클리닉 진료를 오가며 진료 전 예진과 태아 초음파 검사, 결과 상담 및 염색체 검사 과정을 함께한다. 초음파 장비에 문제가 생긴 진료실에서 박 차장을 급히 찾으면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간단한 문제들은 직접 해결하고 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산모들에게 자세한 설명과 격려를 덧붙이면 산모들은 안도하며 귀가한다.
“6층 수술실에서 콜이 들어오면 지원차 6층으로 뛰어가요. 점심 식사가 자연스럽게 생략되곤 하죠. 태아 응급수술은 주말에도 예외없이 진행되고요. 그때마다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무사히 태아 치료를 지원한 후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에요. 수술 후 산모 가족과 ‘고맙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라는 짧은 인사를 나눌 뿐이지만 그 속엔 따뜻한 온도가 스며 있죠.”
▲ 진료 전 초음파 검사 세팅을 하고 있다.
태아수종으로 태아 사망을 경험했던 산모를 의뢰받고 총 8번의 태아 수혈을 진행했다. 태아 수혈은 고농축한 혈액이 굳지 않도록 헤파린을 넣은 주사기에 담아 1cc를 천천히 짜야 한다. 시간을 재며 얇은 탯줄에 혈액을 주입하면 혈액 샘플 운반과 헤모글로빈 수치 계산 등의 과정이 이어지는데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숙련된 8~9명의 의료진이 짧은 시간에 밀도 높은 협업을 펼치는 것이다. 의료진의 노력 끝에 무사히 아이를 품에 안은 산모는 곧이어 둘째를 임신했다며 센터를 찾았다. 첫째와 같은 증상으로 어려운 치료를 반복한 끝에 또 한번 출산에 성공했다.
“어려운 과정일수록 진한 기억으로 남아요. 태아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질환이 있어서 기본적인 질환과 초음파 내용 등을 열심히 공부해야 돼요. 일과 외의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하지만 항상 도전의 즐거움과 자부심이 조금 더 컸어요. ‘이런 케이스를 본 적 있으세요?’ ‘이 쪽으로 시술해도 괜찮겠죠?’ 주니어 선생님들의 질문을 받을 때면 오랜 경험이 저만의 자산이라는 걸 실감하죠. 제가 도움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 산부인과 정진훈 교수(오른쪽)의 시술에 참여해 초음파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시술에 참여한 박 차장은 초음파 위치를 확인하며 밝기 등을 세심히 조절했다. 모두가 집중한 순간, “쉬운 케이스가 없네!” 산부인과 원혜성 교수의 혼잣말이 침묵을 깼다. 태아내시경과 션트 시술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질환들이 더욱 복잡하고 세분화되면서 의료진이 느끼는 긴장감은 나날이 커진다. 고연령 산모와 다태아가 크게 늘어난 영향도 있다.
“센터 의료진이 모여 ‘이게 될까?’ 함께 고민해요. 그렇기에 치료 목표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해냈다’라는 느낌을 동시에 나눌 수 있죠.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해요. 외부 교수님들이 우리에게 대단하다며 격려해줄 때, 고위험 산모들을 도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생명을 돌볼 때 더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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