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의 대담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서울아산병원이 장년기를 지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초기의 도전정신과 열정, ‘신나서 춤추듯이 일했다’는 분위기를 되찾자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한번 해보자!’ 하는 분위기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 모두 한 팀, 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서로를 챙기고 격려할 수 있을까? 이 대담은 올해 초 박성욱 아산의료원장님과 진행한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시작부터 심장내과 교수이자 경영진으로 병원을 이끌고 있는 의료원장님과의 대담이 우리에게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담 진행 :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
의료원장님께서는 병원이 의사와 간호사 외에도 많은 다양한 직종의 직원들이 협력하여 유지하는 곳임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계실 듯합니다. 또한 서울아산병원의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아산병원 초기의 가치관과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1989년 서울중앙병원이 개원할 당시, 기존 유수의 대학병원보다 뛰어난 병원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국내 타 대학은 물론이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의욕 넘치는 뛰어난 분들이 합류했어요. 아산재단 정주영 설립자께서도 큰 투자를 아끼지 않으셨죠. 처음에는 당직도 많이 섰고 병원 체계도 전부 새로 만들었으며 외국에 벤치마킹도 많이 갔었죠. 저녁에 술잔도 나누며 이야기도 많이 하고…. 굉장히 바쁘고 힘들었던 것 같은데 사실 지금은 당시의 어려움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정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네요.
아산재단은 1978년부터 정읍, 보성, 보령, 영덕 등 의료 취약지역에 병원을 세웠습니다. 1989년 서울에 병원을 만들며 서울중앙병원으로 이름을 지은 취지도 각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환자들을 잘 치료하고 의료진을 교육하는 센터로서의 병원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의욕과 자긍심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일류 병원이 되는 것은 아니죠. 저는 그 비결이 재단과 병원의 리더들이 미션과 비전을 정하고 이를 구성원 모두와 공유한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션은 조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고 비전은 일정 기간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의 미션은 ‘우수한 진료, 연구, 교육을 통하여 인류의 건강한 삶에 기여한다’입니다. 여타의 사립 병원이나 의료법인과는 달리 사회복지재단으로서 이런 이념, 우리에게 오는 환자들과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미션이 있고, 그것을 병원 구성원 모두가 공유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전 2003년 기획조정실장으로 병원 경영진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기획조정실은 영어로 ‘Department of Budgeting and Planning’라고 하는데요, 즉 예산과 계획을 다루는 부서입니다. 모든 예산과 계획은 미션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구성돼야 하고, 리더가 구성원들의 뜻을 모아 미션과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다 같이 공유하고 그 목표를 위해 같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은 의료진의 수준이 높은 만큼 구성원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각자 주장도 강합니다. 그 수도 많아서 의사와 간호사만 해도 그들의 목소리를 다 듣기 어려운데 다른 많은 직종의 직원들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를 조율할 수 있는 리더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팀워크, 협동 작업입니다. 심장내과 의사가 환자 한 명을 보는 데에도 의사, 간호사, 기능원, 원무팀, 진료지원부서 등 많은 직종의 직원들이 함께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을 한다면 같은 팀의 구성원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을 수 있느냐에 따라 역량에 큰 차이가 납니다. 의사가 진료, 연구, 교육 혹은 경영, 정책의 측면에서 방향을 정하고 리더의 역할을 하지만 결국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죠. 의사소통은 지시를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경청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지 않고서는 경청을 할 수 없죠. 따라서 리더에게 꼭 필요한 자질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제가 서울아산병원 여러 부문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분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역지사지’ 프로그램이라고, 의사와 간호사가 하루 이틀 동안 서로 역할을 바꿔서 해보거나 신임 교수가 환자 체험을 하며 동선도 따라가 보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말하자면, 미션과 비전을 확실히 공유하기 위한 전략을 만들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의사소통의 바탕에는 경청이 있고, 경청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입니다. 이것이 잘 되어야 조직이 성과를 낼 수 있어요. 만약 서울아산병원이 그동안 성과를 잘 냈다면 이런 과정이 잘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울산의대 학생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병원 곳곳에서 스스로 리더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 생각되어 여기에 옮긴다.)
울산의대 졸업생들 중에서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 과학, 공공정책 부분에서의 리더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학창 시절에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을 추구하기를 바랍니다. 선배로서 진부한 충고를 한다면 우선 건강이 제일 중요합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정신이 건강하기도 어렵습니다. 평생의 운동 하나 정도는 습관을 들여놓으세요. 그리고 많이 읽고 많이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의학적인 것도 당연히 공부해야 하지만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과 종교에 대한 관점이라든지 삶의 기원, 진화론 등에 대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앞으로 많이 활용될 최신 지식도 알아야 해요. 경제 지식, 개인정보 보호, 인권,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통찰, 공정이나 사회정의 등 이슈도 알아야 하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술도 마셔야 하는데. 이것을 다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되겠지만 훌륭한 리더들은 시간 경영 또한 잘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도 미션과 비전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세부 목표를 만들며 이것들을 위한 시간을 잘 관리하기 위해 시간을 경영하는 방법을 배우셔야 해요. 잘할 수 있고, 잘할 것이라 믿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셨던, 병원의 리더가 미션과 비전을 공유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듯이, 각자가 자기 인생의 리더가 되어 각자의 삶에서 매일 실천해보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아산병원의 미션은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높은 수준의 진료, 교육, 연구를 성취함으로써 인류의 건강한 삶에 기여한다’, 비전은 ‘누구에게나 가장 신뢰받는 병원’ ‘최적의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 ‘직원 모두가 행복하고 긍지를 느끼는 병원’ ‘건실한 경영으로 성장, 발전하는 병원’ ‘창의적 연구와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병원’이다. 아산재단의 설립 취지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다. 이번 글을 준비하며 이 미션과 비전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난 이 미션과 비전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그 미션과 비전이 우리 속에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이 이 미션과 비전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보자.
※ 박성욱 아산의료원장은 1981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 및 전임의 과정을 수료한 후 1989년 서울아산병원 개원에 맞추어 심장내과에 합류했다. 이후 심장내과 의사로서뿐만 아니라 병원 경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003년부터 4년간 기획조정실장, 2009년부터 2년간 진료부원장을 역임했고 2011년부터 6년간 서울아산병원장으로 근무했다. 2021년부터는 아산재단 산하 8개 병원을 총괄하는 아산의료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 울산의대 학생부학장으로 재임 중인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가 울산의대 인문의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의 지난 30여 년을 이끌어 온 다섯 명의 선배 의사를 만났습니다. 도전과 열정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병원의 성장을 이뤄 낸 선배 의사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5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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