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병실에 피어난 사과나무 2022.10.12

암병원간호1팀 임정후 사원

 

 

2021년 5월 따스한 봄날. 다인실 창가 자리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입원했다. 5년 전 전립선암을 이겨낸 이○○님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왔고 검사 결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고령이지만 정정했던 환자는 보호자 없이 의연하게 항암치료를 받았고 병동의 모든 간호사들은 한마음으로 환자의 치료가 잘되기를 응원했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항암치료는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병동에 입실할 때 무덤덤했던 환자는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야속하게도 백혈구와 아세포의 수는 점점 더 많아져 갔다. 새로운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쇠약한 환자 상태로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 환자와 보호자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힘들더라도 끝까지 치료를 받아보기로 하고 마지막일지 모를 아버지와의 시간을 위해 따님이 보호자로 입실했다. 우울했던 환자는 따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점차 밝아졌고 간호사들은 그런 변화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보호자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간호사실을 찾아왔다. 아버지 자리가 창가쪽이어서 창밖 옥외공원을 자주 바라보곤 하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병든 것처럼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는 것이었다. 보호자는 환자가 매일 그 나무를 보며 우울함을 느꼈고, 하루는 글썽이며 “저 나무는 꼭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내 모습 같다”라는 혼잣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병실에 있는 아버지가 그나마 볼 수 있는 게 창밖의 시들한 나무인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며 그 나무를 베어주면 안 되겠냐고 문의했다.

 

병동에서 논의한 결과 아무리 환자의 부탁이지만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대신 푸른 나무가 그려져 있는 시트지를 구매해서 그 나무가 보이는 창문을 가려 주기로 했다. 며칠 뒤 시트지가 도착했고 한층 밝아질 병실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환자와 보호자는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다. 알고 보니 병원에서는 이미 병해를 입은 나무를 정리할 계획이었고 마침 시트지를 붙이기로 한 날 그 나무를 베어간 것이었다.

이 같은 우연을 뒤로한 채 우리는 환자의 쾌유를 기원하며 창문에 시트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새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아주 크고 푸른 나무였다. 환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입원 후 처음 보는 밝은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창문에 붙인 사과나무에 우리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환자는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적처럼 회복해 외래 진료를 보러 다닐 정도가 되었다. 가끔 7층 옥외정원에서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면 그 환자가 떠오른다. 환자는 건강해져서 일상의 회복을 바라고, 우리는 그 환자를 다시 환자로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그 바람이 현실이 될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 병실 창문에 주렁주렁 열렸던 새빨간 사과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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