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김치 국물로 전한 위로 2023.04.03

암병원간호2팀 지영아 과장

 

 

 

내가 근무하는 75병동은 부인암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받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다. 항생제내성균 때문에 1인실에 격리 중이었던 김미선(가명) 님은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 유튜브로 ‘먹방’을 보며 식욕을 달래는 분이었다. 배액관을 여러 개 꽂고 있었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1년째 와병 중이었다. 아침 일찍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려 병실로 가보니 환자는 미동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놀랐지만 차분히 환자 손을 감싸 쥐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환자는 몇 년 전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좌절과 우울, 고독을 느낀다고 신세한탄을 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그래도 살아야죠. 우리 멀리 보지 말고 하루씩 바라봐요. 음, 어제보다 나아진 게 뭐가 있죠? 아, 배액관 한 개를 제거했잖아요”라고 말했다. 환자는 눈물을 거두고 “그러네요. 지긋지긋한 배액관 한 개를 빼버렸네요”라고 답했다.

그날 오후, 침상에서 자세 변경을 돕고 있을 때 환자는 조심스럽게 아침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깍두기가 나왔는데 양이 너무 적더라고요. 소화가 안돼서 깍두기 국물이나 김치 국물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개별 환자마다 달리 제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자는 지방에서 혼자 올라왔고 당시엔 코로나19가 심할 때여서 면회도 어려웠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리집 냉장고를 떠올렸다. 냉장고 안에는 친정엄마의 손길과 내 노동력이 조금 보태진 김장김치가 잘 익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집은 병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혹시 저희 집 김치 국물을 조금 가져다 드릴까요? 맛은 장담 못해요”라고 슬며시 물어보니 환하게 웃으며 “정말요? 그래줄 수 있어요? 그럼 너무 고맙죠! 전 국물만 있으면 돼요.”

근무를 마친 뒤 집으로 가서 빈 용기에 김치 국물을 담아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오가는 30여분 동안 환하게 웃을 환자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환자에게 슬며시 김치 국물이 든 용기를 내밀었다. “어머, 정말 가져왔어요? 이렇게나 빨리?” 환자는 너무나 좋아했고 이제 밥이 잘 넘어갈 것 같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냉장고에 넣으면서 저녁 맛있게 드시라는 말과 함께 퇴근했다.

환자가 김치 국물 얘기를 했을 때 다음날 출근할 때 가져다 줘도 됐지만 울면서 시작한 하루를 웃으면서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오늘 하루가 마법 같이 무언가가 이뤄지는 멋진 날이었음을 환자가 떠올리며 ‘오늘도 살만 했구나!’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해준 김치가 한 환자에게 위로와 감동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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